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출처=Ethan Jameson/Unsplash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출처=Ethan Jameson/Unsplash

지난 19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중앙은행 총재를 갑작스럽게 교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틸베 야르딤(30)은 서둘러 가지고 있던 현금을 암호화폐로 전환했다.

그는 코인데스크US와의 인터뷰에서 “터키에서 금융을 아는 국민들과 투자자들은 금요일 밤 벌어진 일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중앙은행 총재 교체는 2019년 중순 이후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터키의 화폐와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투자자 불신은 한층 더 높아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등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한다. 이번에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한 것도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터키 법정화폐인 리라의 가치는 22일 미국 달러 대비 15% 급락하다가 이후 조금 반등했다.

중앙은행이 불안하면 사람들은 암호화폐로 눈을 돌린다. 22일 리라의 가치가 급락하자 터키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인터넷 검색 횟수가 급등했다. 전형적인 안전자산인 금 등 귀금속에 대한 검색은 변동이 없었다. 터키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없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터키의 젊은 인구는 디지털 자산을 자유롭게 구매하고 거래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암호화폐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과세 기준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 암호화폐에 대한 터키인들의 관심이 급등한 것은 보다 큰 그림의 연속선상으로 봐야한다. 이스탄불에 있는 카디르 하스 대학(Kadir Has University)에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이스마엘 하키 폴랏은 암호화폐에 대한 터키인들의 관심이 이미 몇 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처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늘어난 나라와 달리, 터키인들은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암호화폐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터키 현지 언론은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던 올해 초 터키의 가장 큰 암호화폐 거래소 파리부(Paribu)와 BTC터크(BtcTurk)의 일일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10억달러(약 1.1조원)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현지시간 24일 오후 3시 12분 기준, 터키의 상위11개 암호화폐 거래소의 전체 하루(24시간) 거래량은 60억달러를 초과했다.

 

코로나19와 비트코인 강세장

야르딤이 암호화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 야르딤은 아기옷을 만들어 전 세계 지점에 공급하는 가족사업을 운영한다. 그런데 작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3개월간 문을 닫았고, 수입이 끊기자 야르딤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는 이미 예전부터 리라의 가치가 달러 대비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축한 돈을 은행에 남겨두는 것은 “최악”의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최소한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투자하자고 생각했다.”

야르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다양한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지금은 바이낸스(Binance)를 이용하지만, 처음 암호화폐에 투자할 때는 BTC터크를 이용했다. 터키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이스탄불의 대형 쇼핑센터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 가면 일반 오프라인 상점에서도 암호화폐를 판매한다.

지난해 터키 정보통신기술청(ICTA)이 발간한 암호화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터키에서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는 약 240만명으로, 터키 전체 인구의 3%에 해당된다. 폴랏은 특히 지난해 비트코인 강세장이 이어진만큼, 실제로는 더 많은 터키인들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영국 암호화폐 거래소 CEX.IO의 콘스탄틴 아니시모브 상무이사는 3월 14일 이후 터키인 이용자의 하루 평균 신규 등록 건수가 3월 초와 2월에 비해 무려 78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터키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사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로컬비트코인스(LocalBitcoins)과 같은 P2P 거래 플랫폼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로컬비트코인스도 상당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인데스크US에 제공된 자료에 따르면, 2019년과 2020년 사이에는 로컬비트코인스의 신규 등록자 수가 10%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올해 2월에는 신규 등록자 수와 웹사이트 접속 횟수가 2020년 월평균에 비해 3배나 높았다.

 

규제는 나중에 도입될까?

지금까지 터키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암호화폐에 적용되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터키 정부도 암호화폐 업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폴랏은 언젠가는 규제가 도입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봤다. 현재 터키 중앙은행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와 통화 위기이기 때문에, 암호화폐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편 야르딤은 디지털자산의 장기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암호화폐가 ‘다크웹’에서 불법거래 용도로만 사용되는 자산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터키에서는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높은 세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현재 많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카디르 하스 대학교. 출처=카디르 하스 대학교 홈페이지
카디르 하스 대학교. 출처=카디르 하스 대학교 홈페이지

터키의 젊은이에겐 암호화폐가 '미래와 자유'

폴랏은 2018년 이스탄불에 있는 카디르 하스 대학에서 암호화폐 기초 과정을 공동 개설했다. 처음에는 최대 수강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했으나, 마이크로스트레티지테슬라 등 대형 기업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하며 강세장을 이끌자 수강 문의가 증가했다. 이에 폴랏은 타 전공 학생들에게도 수강 권한을 확대했고, 전공과 상관없이 같은 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수강 신청이 가능한 정원 30명의 수업을 하나 더 추가했다. 폴랏은 지금까지 200명 정도가 과정을 이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한다. 일반적으로 금을 선호하지 않고 금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디지털 금’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터키의 청년들 중에는 그저 국가의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있다.

“암호화폐의 투자 수익률이 낮다면, 누가 투자하겠는가? 미국인들이 투자하겠는가? 터키인들이 투자하겠는가? 물론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 틸베 야르딤

야르딤은 터키 청년들이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17살 사촌동생은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채굴도 한다고 말했다.

“터키 청년들에게 암호화폐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미래와 자유.”

영어기사: 임준혁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

키워드

#터키 #규제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