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 도지. 출처=레딧
다스 도지. 출처=레딧

암호화폐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사람들에게 도지코인(DOGE)은 언제나 묘한 존재였다. 높은 접근성과 특유의 매력으로 새로운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암호화폐를 유용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대부분의 특징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지코인은 2013년 잭슨 파머와 빌리 마커스가 개발한 암호화폐다. 그런데 도지코인 창립자들과 개발자들은 이미 수년 전 도지코인을 포기했다. 도지코인 팬들도 마찬가지다. 아주 최근까지 도지코인은 자체 블록체인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2014년에는 또 다른 신생 암호화폐였던 라이트코인(LTC) 블록체인에 편승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도지코인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랬던 도지코인이 지난 16일 라이트코인을 추월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밈 기반 최대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라이트코인(그리고 330년 전통의 바클레이 은행)의 두 배를 뛰어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도지코인 가격 차트. 출처=코인마켓캡 캡처
도지코인 가격 차트. 출처=코인마켓캡 캡처

 

화폐 선택을 결정짓는 요소

2년 전 나는 이란, 인도, 싱가포르, 온두라스, 나이지리아 등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에 앞서 나는 응답자들이 비트코인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 이들 나라에서는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가 하루 일해서 벌 수 있는 돈보다 비쌌고, 현지 물가와의 괴리도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인터뷰를 통해 배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최선의 선택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념은 스스로 강화하는 고리를 만들었고, 그 영향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화폐를 선택하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화폐 중에, 나에게 가장 유용한 화폐를 골라 사용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유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예측가능성이다. 사람들이 법정화폐를 비트코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각국의 정치·경제 상황과 분리된 가치저장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비트코인은 총 공급량이 정해져 있고, 운영 방침도 크게 바뀔 일이 없다. 그만큼 정부의 손길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첫번째 이유보다 더 중요한 두번째 이유는, 비트코인이 지니는 유동성이다. 내가 보유하는 암호화폐를 팔고자 할 때 언제라도 그 암호화폐를 시장가에 살 의향이 있는 구매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화폐를 선택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고려 요소다.

앞서 말한 각각의 나라에서 비트코인은 값비싼 암호화폐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만인의 선택을 받는다. 다른 종류의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암호화폐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투자할 수 있는 ‘소수 코인’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 코인에 대해서는 형성된 컨센서스가 없거나 매우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자는 투기에 가깝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으나, 비트코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발자의 이익(first-mover advantage)’을 누리고 있고, 네트워크 효과도 상당하다. 쉽게 얘기하자면, 비트코인의 유용성이 이토록 높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도지코인이 떠오르는 이유

올해 들어 나는 도지코인이 비트코인의 선례를 따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예측가능하며 유동성 높은” 화폐를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하듯이, “밈과 같은 엉뚱함”을 쫓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도지코인을 선택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슬림짐(Slim Jim), 마크 큐반을 비롯한 세계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는 밈 문화도 이를 증명한다.

콘아그라 브랜즈(Conagra Brands)는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콘아그라는 그다지 유명한 기업이 아니다. 슬림짐(훈제 고기 스틱), 마리캘린더(내가 1990년대에 한두 번 가서 먹었던 식당 체인), 헌트토마토(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토마토 소스) 등을 포함해 아주 오래 전 출시된 몇 가지 브랜드를 소유하는 미국의 식품 기업이다.

그런데 최근 콘아그라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다. 지난주 초 열린 실적발표에서 숀 코널리 콘아그라 CEO는 회사의 ‘도지코인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코널리는 도지코인 덕분에 슬림짐 트위터 팔로워 수가 두배로 늘고 관여도 500%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달 초 애드위크(Adweek)가 주최한 마치 매드니스(March Madness) 브랜드 경합에서 슬림짐이 최종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도지코인 커뮤니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도지코인은 사람들이 재미를 누리기 위해 갖고 싶어하는 코인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미에 함께하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도지코인의 가격은 더욱 높아지며, 이는 더욱 큰 재미로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강화하는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재미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트코인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결말은 처참할 수 있다. 도지코인을 구매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이면의 진짜 이야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는 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도지코인은 재미를 위한 암호화폐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어쩌면 지금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영어기사: 임준혁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저작권자 © 코인데스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