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상이 암호화폐(가상자산) 광풍에 힙싸였다. 4년 전인 2017년 1차 광풍 때보다 열기가 더 뜨겁다. 과연 4년 전과 오늘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4년만에 다시 찾아온 암호화폐 광풍을 현상과 진단, 미래 등 세 차례에 나눠 진단해본다.

비트코인은 세계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세상에 나왔다. 이익을 사유화해온 금융자본이 손실을 사회화하는 현실에 분노해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를 자양분 삼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대안화폐의 꿈을 키워갔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급등했다. 두 시기 모두 중앙은행의 돈풀기와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됐다.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그러자 월가는 그에게로 다가가 ‘디지털 금’이라 불러줬다.

출처=Vadim Artyukhin/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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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에 포섭되는 암호화폐

금이 가치저장 수단으로 사용된 건 희소성과 영속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비트코인도 전체 발행량(2100만개)이 한정돼 있는데다 4년마다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맞는다. 또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한 디지털 세계에서 영원할 수 있다. 차세대 가치저장 수단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갖춘 셈이다.

월가에서는 금의 시가총액과 비교해가며 비트코인의 가격이 수십만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낙관론을 퍼뜨렸다. 이에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하루 5%, 한 달에 20% 등락하는 것은 화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를 원한다면 땅을 조금 사서 올리브 같은 것을 키워봐라. 그러면 땅값이 떨어지더라도 올리브를 갖게 된다”며 ‘미래의 수확물’을 강조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암호화폐가 막연한 추측과 기술적 지표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새로운 먹거리 선점을 위해 디지털자산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은행부터 투자회사, 결제업체까지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디지털자산 수탁서비스업체에 투자했고, 제이피모건은 상장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등은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거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에는, 높은 가격 변동성과 거래소의 취약한 보안 등이 걸림돌이다.

암호화폐가 장기적으로는 가치저장과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유럽 등에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가치저장 공간의 부족을 의미한다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대체 가치저장 공간으로 여긴다고 짚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보안 문제가 해결되고 가격 변동성이 낮아진다면 금리가 0%대인 선진국 국채 수요의 일부가 암호자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자본의 투자는 은행 등 중간 매개자를 없애려는 암호화폐의 꿈과 충돌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경제사학자 에드워드 캐슬턴은 “월가의 공룡들이 암호화폐를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보고 이 신기술에 투자해 디지털 광풍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캐슬턴은 분권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한 화폐 유토피아의 실현이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에 의해 좌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출처=Lo lo/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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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화폐에서 폰지사기까지 시각차

지난 3월 기준 세계 암호화폐 중개소는 3만4000곳에 육박하며 여기서 거래되는 암호화폐 종류만 8500개에 이른다. 암호화폐 유형도 비트코인처럼 거래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코인 외에 이더리움처럼 플랫폼에 사용되는 코인,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잘게 쪼갠 증권형 토큰 등 다양하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은 지난달 28일 유럽투자은행(EIB)이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디지털 채권을 발행할 것이라는 소식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일론 머스크의 ‘팬덤’이 전부인 도지코인 가격은 연일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다.

거품 논란이 커지자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를 플랫폼이나 소프트웨어의 내재가치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은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인 디파이 시장의 급성장을 사례로 든다. 고유의 가치를 지닌 대체불가능토큰(NFT)도 부각되고 있다.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의 공간 속에서 거래할 때도 엔에프티가 쓰인다.

나심 탈레브는 비트코인을 ‘폰지게임’(다단계 금융사기)에 비유했다. 192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찰스 폰지의 사기 행각에서 유래된 말이다. 2008년 사상 최대 폰지사기극의 파국을 맞은 버나드 메이도프는 지난달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감옥에서 82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은 최근 보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암호화폐의 광기는 ‘메이도프의 후예’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체불가능토큰은 누군가의 1년치 방귀 소리를 담은 오디오 클립까지 발행될 정도로 광란의 지경이라고 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하이라이트는 누리집이나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이 엔에프티를 산다는 건 미래에 다른 사람이 더 높은 가격에 사줄 것이라고 믿는 도박으로 봤다.

기업의 지분만큼 미래의 수익을 사는 주식과 달리 이들에겐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맨 마지막에 줄을 선 사람들은 만화영화에서 벼랑 끝 공중에 떠 있는 ‘와일 E. 코요테’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일 E. 코요테(Wile E. Coyote). 출처=루니툰즈
와일 E. 코요테(Wile E. Coyote). 출처=루니툰즈

반면 미국 투자자문사 콤파운드 어드바이저는 비트코인이 다시 추락한다면 지금이 거품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나스닥과 주택 거품도 붕괴되었다가 다시 최고치를 기록하지 않았느냐며, 확실한 건 미래의 화폐는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산업으로서 블록체인의 혁신성보다는 금융으로서 암호화폐의 투기성을 둘러싼 극단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인터넷 등 신기술의 등장은 기존 구조를 뒤흔들어 진통이 뒤따랐다. 기술혁신의 속도를 규제가 따라잡기는 힘들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라는 새로운 기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보완해 기술 발전을 꾀하는 포용적 자세가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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