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암호화폐(가상자산) 투기 확산으로 투자자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의 자산일 뿐이라며,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어려우며 개인 차원에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전통적인 화폐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화폐가 되기 위해선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한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퍼센트씩 오르내리는 큰 변동성을 가진 자산이 화폐로서 기능하기는 어렵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제도화 논의에 선을 긋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논의를 떠나 이미 수백만명의 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있는데다, 거래소들이 난립하면서 무늬만 암호화폐인 코인들을 유통시켜 투자자들이 큰 피해에 노출돼 있는 현실을 방치해두긴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나 올해 9월까지 일부 중소형 거래소들은 신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폐쇄될 수 있어 그 전에 ‘먹튀’를 할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어떻게 투자자를 보호할 것이냐다. 우리나라는 열거주의 방식의 대륙법(성문법) 체계를 채택하고 있어 정부가 법으로 투자자 보호에 나서려면 주식이나 채권처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암호화폐가 구체적으로 법에 금융투자상품으로 명시가 돼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설명의무나 계약해지권, 손해배상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금융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판례 중심의 영미법(관습법) 체계에서는 어떤 기준(‘투자계약’)을 정해놓고 이에 해당하면 정부가 개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허하는 방식이다. 타인의 노력으로 투자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믿음을 가지고 투자한 경우는 ‘투자계약’에 해당해 증권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1946년 하우이(Howey) 판례에 연원을 두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상장을 허용한 반면에, 지난해 12월 국경 간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암호화폐 업체 ‘리플’에 대해선 사실상 증권을 발행하면서도 등록을 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고발 조처했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국에서는 규제 체계를 갖춰가면서 장기적으로는 가상화폐를 금융자산 또는 지급 수단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그러나 이를 완전한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경우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어떤 경우는 원천적으로 발행을 금지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는 대륙법 체계지만 또 다르다. 일본은 현금거래 비중이 매우 높아 디지털 통화와 같은 비현금 결제의 활성화에 관심이 높은데다 2013년 당시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의 해킹 사건이 발생해 제도화와 규제 논의에 적극적이었다.

일본 금융청은 2018년 10월 일본가상화폐거래소협회(JVCEA)를 자금결제법상 자율규제기관으로 인증하고 거래소 등록 심사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 특성을 고려해 개정·신설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법규보다는 자율규제로 업계를 일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규제 이슈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취지였다.

이어 협회는 금융청과의 협의 아래 자율규제 최종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원사에 대한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최종안에는 협회에 회원사 영업 검사 및 자격정지 권한 부여, 투자자보호기금 마련, 은행예금·국채와 같은 안전자산 보유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암호화폐에 대한 시각 차이가 매우 크고 미래 불확실성도 높아 단기간에 법체계에 포괄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업계 차원의 자율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장 규율과 투자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금융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미국 코인베이스는 한국 거래소들과 달리 코인 상장 절차가 매우 엄격하고 고객 보호도 웬만한 은행들보다 더 안전하다는 평을 듣는다”며 “상장 심사와 투자정보 공시 등 자율규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성을 악용해 선량한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채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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