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지난 4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본인을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이 글에서 크게 세 가지 얘기를 했다. 우선 투자자 보호는 안 해주면서 세금을 내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 두 번째는 금융위원장이 블록체인과 코인 시장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문. 세 번째는 문제 해결 방안은 생각 않고 코인투자 청년 탓을 하는 금융위원장은 사퇴하라는 요구였다. 

이 청원글은 20만1079명의 동의를 얻었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국민청원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직접 공식 답변을 하도록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사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이 일로 실제로 자진사퇴를 할 가능성은 낮겠지만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변을 할까. 

마침 지난 23일 이 청원글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 올라왔다. 청원 마감이 5월 23일이었으니 한 달 동안 준비한 글인데, 읽는 순간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청와대는 답변글에서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염두에 둔 가상자산 정책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는 두 가지를 들었다. 큰 줄기가 되는 것은 5월 28일에 발표했던 '가상자산 거래관리방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암호화폐 관련 분야를 어떻게 살펴볼지 교통정리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올해 5월에서야 이 발표를 통해 관할이 간신히 정해졌다. 가상자산사업자 관리감독과 제도 개선은 금융위원회가, 블록체인 기술발전은 과기정통부가, 불법, 불공정 행위 관련해서는 관계 부처 차관회의(TF)에 국세청과 관세청을 추가해 대응하는 방식이다. 

특정금융정보법 신고유예기간인 올해 9월 24일까지 발생할 수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관리 공백과 관련해서는 가상자산 사업자 조기 신고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컨설팅은 6월 10일 암호화폐 거래소들에게 신청을 받고, 15일께부터 진행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컨설팅 신청 자리에서 관계당국과 면담을 한 후 업비트 등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수십 종의 부적절 코인들을 상장폐지하기 시작했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은성수 금융위원장 자진사퇴 요구 청원은 5월 23일에 완료됐다.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 정책 2가지는 각각 5월 28일과 6월 10일에 나왔다. 20만명에 달하는 청원이 마감된 후에야 비로소 실효성 있는 암호화폐 관련 정책들이 나왔다는 얘기다. 

결국 청원 전에 정부가 제대로 한 일은 없다고 봐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응당 청와대 답변에는 암호화폐 시장 관련 정책 공백에 대한 명확한 인정과 사과가 담겨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책임을 유려하게 회피하는 기술적인 문장들이 담겼을 뿐이다. 

은성수 위원장은 청와대 답변이 올라오던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코인들을 상장폐지한 것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암호화폐 가격변동과 거래정지까지 금융당국이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사적으로 권리구제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글쎄다. 은 위원장과 정부, 금융당국이 올해 6월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했던 조치들을 올해 초에 내놨더라면. 어차피 상장 폐지될 코인들의 가격이 오르기 전에 거래소들을 관리했더라면 더 많은 투자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책임감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공무원도 아닌데 공연히 기자만 속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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