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사당 돔. =Ian hutchinson/unsplash
미국 의회의사당 돔. =Ian hutchinson/unsplash

정부는 암호화폐를 멈출 순 없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을 훨씬 어렵게 만들 수는 있다. 세계 주요 경제국이 암호화폐에 불리한 정책을 도입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중국 정부가 또 한 번 암호화폐 단속 방침을 발표하자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30%까지 급락했다. 시장은 중국 정부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고요하다.

이번 주 미 상원에서 통과된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에는 큰 논란이 있었던 암호화폐 과세 조항이 담겨 있다. 그동안 업계는 조항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이들은 채굴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 암호화폐 관련 사업이 해당 조항에 따른 세금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시세를 끌어내릴 수 있는 불리한 소식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

중국의 암호화폐 단속에는 폭락한 시장, 미국 과세 방침에는 고요
중국의 암호화폐 단속에는 폭락한 시장, 미국 과세 방침에는 고요

오히려 법안 통과 후 며칠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최대 7%의 상승세를 보였다. 암호화폐 시장 전체의 시가총액도 5월 이후 최고 수준인 2조달러까지 상승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24일 예산 법안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최종 통과 표결은 9월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날 하원에서 암호화폐 조항의 내용을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장이 미 의회의 결정에 아직까진 크게 반응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시장이 중국과 미국의 규제 방침에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트코인 가격의 움직임은 늘 그렇듯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고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몇 가지 그럴듯한 해석은 가능하다.

 

중국 규제는 ‘확정 단계’, 미국은 ‘시작 단계’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암호화폐를 경계해 왔고 암호화폐에 대한 단속에 나선 것도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암호화폐 채굴 금지령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해 보인다. 이미 중국 채굴업계는 정부 방침에 반발해서 달라질 것이 없음을 인식하고 사업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법안이 이제 막 상원을 통과한 상태다. 이제부터는 다음 주 법안 검토에 나설 하원에 로비 활동이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하원에서 암호화폐 관련 조항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암호화폐 업계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법안이 그대로 통과돼도 미 재무부가 ‘브로커(broker)’의 정의를 암호화폐 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좁혀 해석할 여지가 있다.

홍콩 암호화폐 트레이딩 기업 앰버 그룹(Amber Group)의 CEO 마이클 우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전면적인 소탕 작전”이었다면 미국의 경우는 “대화와 논의가 시작되는 관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업체 코인게코(CoinGecko)의 바비 옹 공동창립자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같은 생각이다.

“핵심은 법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시장은 궁극적으로 의회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조항을 개선할 것으로 믿고 있다.”

 

미 의회에서 벌어진 일은 암호화폐에 오히려 유리하다

미 의회의 암호화폐 과세 조항을 둘러싼 논란은 암호화폐 업계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암호화폐는 이번 계기를 통해 미 정치권의 주요 안건으로 등극했다. 1조달러 규모의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미 의회가 암호화폐의 존재와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아울러 근본적으로 분산돼 있고 분열된 모습을 자주 보여왔던 암호화폐 업계가 실질적인 정치 세력이 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만은 분명하다.

마이클 케이시 코인데스크 최고콘텐츠책임자는 “암호화폐 업계는 이미 정신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말하며 “한때 주류와는 거리가 있었던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합법성을 부여받으면 결국엔 업계에 건설적인 정책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의 문제가 아닌 타이밍의 문제

비트코인의 특성을 고려하면 시세 움직임이 중국이나 미국의 규제 조치와 큰 관련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단속에 나선 것은 시장 과열이 끝날 무렵이어서 암호화폐 시장의 하락세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5월 17일 기준 코인데스크 비트코인 가격지수(XBX)는 4만2000달러를 웃돌았는데, 역대 최고치였던 6만4000달러를 기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디파이 얼라이언스(Defi Alliance)의 치아오 왕 파트너는 “(비트코인 가격이 움직이는 것은) 소식 그 자체보다는 시장 참여자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규제는 둘 다 악재지만 “중국이 규제를 발표한 것은 시장에 거품이 많이 껴 있던 시점이었고, 미국은 팔 사람은 이미 다 팔고 난 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오케이코인(OkCoin)의 최고운영책임자 제이슨 라우는 “시장 타이밍이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규제 소식은 시장이 이미 과열 상태를 지나 하락하는 단계에서 추가 악재를 기다리던 시점”에 터졌지만, 미국의 인프라 법안 소식은 “비트코인 가격이 회복하는 단계에서 시장이 추가 호재를 기대하던 시점”에 알려진 것임을 강조했다. 암호화폐 업계가 마음을 모아 하나의 목소리를 낸 모습에 조명이 비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Wu Yi/Unsplash
출처=Wu Yi/Unsplash

미국은 암호화폐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석은 따로 있다. 시장은 근본적으로 미 의회의 암호화폐 과세 조항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궁극적으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디지털 자산 업계가 미국을 떠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암호화폐 시장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미 의회가 내릴 결정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 암호화폐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미국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관 투자를 중심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암호화폐 업계는 점점 더 빠르게 전 세계로 분산되고 있다. 아시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고 앞으로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이야기가 많이 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별 암호화폐 이용량은 정확한 측정이 어렵지만,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2021년 암호화폐 도입 지수에서 미국은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케냐,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8위를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7년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하고 중국 본토 내 거래소를 폐쇄하자 일시적이었지만 세계 암호화폐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바로 전 해에는 대부분의 비트코인 거래가 위안으로 이뤄졌다. 중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2017년 이후에도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지만, 거래소 폐쇄로 트레이더 수를 파악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암호화폐 채굴에 필요한 연산력을 의미하는 해시레이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히 암호화폐 채굴에 있어 지금까지는 중국을 따라갈 국가가 없었다. 글래스노드(Glassnode) 데이터에 따르면 7월 비트코인 해시레이트는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채굴을 금지한 5월에 비해 50% 이상 급락했다. 이후 세계 다른 지역에서 채굴 활동이 시작되며 해시레이트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오케이코인의 라우는 “중국의 채굴 금지령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것으로 이로 인한 영향은 즉각 나타났으며, 비트코인 해시레이트와 네트워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책 논의는 미국 시장에만 해당하는 장기적인 영향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아직은 모호한 부분이 크고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에 영향을 줄 사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비트코인 채굴은 이제 전 세계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는 그 어떤 정부도 비트코인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애초에 비트코인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탈중앙화 화폐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리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영어기사: 정효원 번역, 임준혁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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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미국 #중국
Emily Parker Global managing editor of Coindesk. Emily Parker specializes in Asia and technology. She is the co-founder of LongHash, a blockchain start-up that focuses on Asian markets. Previously, Emily was a member of the Policy Planning staff at the U.S. Department of State, where she advised on Internet freedom, digital diplomacy and open government. Before her time in government, Emily worked for The Wall Street Journal, first as a writer in Hong Kong and later as a writer and editor in New York. She wrote a Wall Street Journal column called "Virtual Possibilities: China and the Internet." She is also a former editor at The New York Times. http://emilyparkerwri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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