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출처=한겨레
금융위원회. 출처=한겨레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 도입이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우려했던 폐업 사업자의 고객 예치금 ‘먹튀’ 사고는 터지지 않았다.

신고를 포기하고 영업 종료한 사업자한테 맡겨진 예치금 출금도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개인별 원화 예치금 잔액도 대부분 1만원 미만의 소액(96%)”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큰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뜻이다.

신고 담당 부처인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이 여러차례 ‘먹튀’를 경고하고, 영업 종료한 사업자들이 출금을 지원하는지 꾸준히 감시한 덕분이다. ‘먹튀’가 일어났으면 정부도 당혹스러웠겠지만, 업계에도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전히 가상자산 산업을 불법 다단계, 사기, 투기 정도로 보는 시각에 또 하나의 사례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2개 가상자산 사업자가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중 거래소가 29곳, 지갑 서비스 업자와 보관관리 업자 등 기타 사업자가 13곳이다. 애초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하면서 국회와 금융위가 규제하려 했던 대상은 거래소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 로고. 출처=각 거래소.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 로고. 출처=각 거래소.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가 약 600만명에 달하고, 거래소의 하루 거래액이 코스피와 코스닥을 넘기도 하는 등 더 이상 회색 지대에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특히 거래소는 법정화폐가 가상자산 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보니 정부가 규제 안에 넣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워낙 초점이 거래소에 맞춰지고 있어, 이로 인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거래소 외 사업자 중 특정금융정보법상 신고 대상인지 명확하지 않은 곳이 있다는 점이다. 특정금융정보법은 신고 의무가 있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가상자산’의 매도·매수·교환·이전·보관·관리·중개·알선 등의 영업을 하는 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사업 성격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모호한 경우가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자는 신고 대상이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많게는 수억원을 들여 신고서를 냈다. 또 일부는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법률 조언을 받고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업 중이지만, 불안감을 떨치지는 못하고 있다.

미신고 영업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일부 사업자들은 당장 문을 닫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당국이 ‘법률 적용 판단의 책임을 오롯이 개별 기업들에 떠넘긴다’고 호소한다. 최근 머지포인트 미등록 영업의 결과를 본 이용자들이 잠재적 규제 리스크를 걱정해 이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은행이 사업자에게 ‘신고 의무가 없다’는 당국의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법인계좌 없이 사업을 할 수 없는 입장에선 절실하지만, 금융위가 이런 질의에 답을 해줄 거라 기대하는 사업자는 거의 없다. 금융위는 지금부터라도 사업자들의 가상자산 사업 형태를 더 세밀하게 파악해 신고 대상인지를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규제 당국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의 선을 되도록 선명하게 긋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는 적극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건전한 산업이 되도록 이끌기보다는, 불명확한 상태로 방치해 향후 규제 가능성만 폭넓게 열어뒀다.

대표적인 사례가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와 엔에프티(NFT, 대체불가능토큰)다. 특정금융정보법상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의 정의를 보면 이 법에 포섭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건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지 기준이 없으니 향후 어떤 규제 리스크가 뒤따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 일부 디파이 사업자들이 법인을 세우지 않고 국적과 이름을 가린 채 익명으로 사업을 하는 데는 모호한 제도도 한몫을 한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지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코너 '헬로, 블록체인'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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