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대체불가능토큰(NFT) 세계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블록체인·NFT라는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의 콘텐츠 제작·유통 환경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함께하는 NFT 아트 매거진 '디지털리유어스'가 NFT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출처=본인 제공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출처=본인 제공

일러스트레이터 집시(Zipcy)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자'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무슨 뜻일까?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옷을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호한 인물들이 사랑을 나눈다. 

"저희 어머니께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데,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제 그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대요. '야한데 야하지 않고 순수하고 고급스럽다'고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마냥 야한 그림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경계를 흐리게 하는 전략이 먹혀든 거죠." 

 
 
 
 
 
 
 
 
 
 
 
 
 
 
 

[Zipcy] Illustrator 집시(@zipcy)님의 공유 게시물

집시 작가는 지난해 초 음성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클럽하우스를 통해 NFT 세계를 알게 됐다. 복제가 쉬운 디지털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창작자 입장에서 블록체인과 NFT라는 새 기술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창작물은 웹에서 무한히 복제가 가능해요. 그래서 항상 그 가치와 희소성이 쉽게 훼손돼 왔어요. 저도 끊임없이 불법 도용과 싸워 왔고요. 그런데  NFT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작품에도 원본의 고유성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고,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가웠어요. 정말 시대가 빨리 변하고 있고, 예술도 그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었고,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집시 작가는 9월 그라운드X의 NFT 플랫폼 '클립 드롭스'에서 처음 NFT를 판매했다. 그의 작품 '두 연인'과 'Eyes In Love'는 각각 500KLAY와 250KLAY에 100개, 155개 판매됐다. 

"제 그림은 어떤 사람들이 보면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어요. 추상화를 그리는 것도 아닌데다가, 인물을 만화와 실사 중간의 '반실사체'처럼 표현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제 작품이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왔어요. 이런 작품 스타일이 NFT 세계에서 통할지 궁금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제너레이티브 아트 프로젝트 '슈퍼노멀 NFT'를 시작한다. 출처=슈퍼노멀 NFT 팀 제공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제너레이티브 아트 프로젝트 '슈퍼노멀 NFT'를 시작한다. 출처=슈퍼노멀 NFT 팀 제공

집시 작가는 제너레이티브 아트 프로젝트 '슈퍼노멀 NFT' 민팅을 앞두고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NFT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수석 개발자 최유진 씨 등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슈퍼노멀 팀은 피부와 머리카락, 이목구비, 장신구, 의상, 배경색 등 1000가지 속성을 서로 다르게 조합한 제너레이티브 아트 작품인 'ZIPS NFT' 8888점을 이더리움 위에서 발행한다. 한국시간 28일 오전 2시 프리세일이, 29일 오전 2시 퍼블릭 세일이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제너레이티브 아트 프로젝트 '슈퍼노멀 NFT'를 시작한다. 출처=슈퍼노멀 공식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제너레이티브 아트 프로젝트 '슈퍼노멀 NFT'를 시작한다. 출처=슈퍼노멀 공식 인스타그램

"슈퍼노멀(super normal)이라는 단어 자체가 특별함, 비범함이라는 의미잖아요. 과거에는 평범한 다수가 경멸하던 스타일이 지금은 대세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평범'이라는 기준이 늘 변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두가 그 자체로 특별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어요. 

저는 기존 작품에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고, 섹슈얼리티, 인종, 정상과 비정상 등 인간의 다양한 경계를 다뤄왔어요. 제너레이티브 아트가 재미있는 건, 지금의 평범함의 기준을 알고 있는 제가 속성을 조합하는 게 아니라, 편견이 없는 인공지능이 속성을 조합한다는 거예요. 

어떤 속성은 아주 평범하고, 어떤 속성은 독특하고, 또 이게 마구 섞일 거예요. 그러다보니 어떤  ZIPS NFT는 성별이나 인종이 모호해 보일 수 있겠죠. 그 결과물들 가운데 어떤 것을 사람들이 희귀하다고 여길지 궁금해요."

집시 작가는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들과 소통해 왔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그림을 즐기는 팔로워 수는 69만명에 달한다. 

집시 작가의 인기 비결은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살려 팬들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있다.

하나의 작품을 올리더라도 흰 배경에 검은 선만 올린 흑백 버전, 채색 중간 과정, 채색을 마친 버전 등을 나눠 게시한다. 또 인물의 전신에서부터 얼굴, 눈 등 단계별로 클로즈업해, 작품 전체의 분위기부터 세밀한 표현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인스타그램에선 보는 이가 미술관에서처럼 걸음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그 대신, 작품을 다양한 각도, 관점에서 감상할 길을 작가가 직접 열어 줬다.

NFT는 집시 작가와 팬 사이 거리를 더 좁히고 있다.

집시 작가는 NFT 구매자에게 느끼는 유대감과 책임감이 기존 팬들에게 느끼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NFT 예술품과 수집품은 실물 포스터나 굿즈처럼 한번 사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창작 과정에서도 NFT를 구매자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집시 작가가 클립 드롭스에서 지난해 판매한 NFT와, 슈퍼노멀 NFT를 모두 보유한 이를 대상으로 미공개 작품을 에어드롭 하겠다고 알린 뒤, 클립 드롭스 발행 NFT의 2차 시장 거래가가 크게 올랐다. 

"과거에는 아무리 인스타그램 댓글로 피드백을 받는다고 해도, 혼자 광장에 나가서 '여러분! 저 이거 그렸어요! 봐 주세요! 사 주세요!'하고 외치는 외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또 인스타그램에 달리는 댓글은 실시간 대화는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확실히 단절돼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NFT 세계에선 말 그대로 실시간 소통이 이뤄져요. 또 전체 프로젝트의 가치, 그리고 작가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팬들이 보유한 개별 NFT의 가치가 함께 오르다보니, 십시일반의 느낌까지 더해졌죠. '이 프로젝트, 이 작가가 잘 돼야 모두가 잘 되는 거야'하고 단체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죠.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매우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걸  NFT 세계에서 느끼고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 코리아
일러스트레이터 집시가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 코리아

꼭 돈 이야기만은 아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NFT는 특정한 세계로 입장하기 위한 입장권 역할을 한다. 슈퍼노멀 NFT 팀은 이 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슈퍼노멀 팀은 이번 NFT 발행을 시작으로, 자체 메타버스 'ZMV'와 패션 게임을 만들 예정이다. 슈퍼노멀 NFT를 보유한 이들은 추후 진행될 '한약 NFT' 민팅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한약 NFT' 구매자들은 랜덤하게 민팅된 속성을 직접 조합해 자신만의 NFT를 만들 수 있다. 

NFT가 단순한 '디지털 기념품'으로 남는 게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실제 쓰임을 갖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앞서 디센트럴랜드 내에 구매한 가상 부동산 위에 슈퍼노멀 전용 공간을 차린다. 여기에서 NFT 홀더를 위한 전시와 파티, 라이브 드로잉 쇼, 교육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이어 오프라인 행사 또한 개최할 계획이다. 

"NFT 보유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프로젝트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적 가치와 감상의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젝트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기본으로 삼되, 이용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혜택을 주는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어요." 

출처=슈퍼노멀 NFT 팀 제공
출처=슈퍼노멀 NFT 팀 제공

집시 작가는 또한 슈퍼노멀 NFT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싱글맘과 그 자녀들을 위한 자선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집시 작가는 "해외 아티스트 얌(Yam)의 제너레이티브 NFT 프로젝트 '월드 오브 위민(World of Women)'처럼, 슈퍼노멀 프로젝트도 가상자산 세계가 여성을 비롯한 더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포용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집시 작가는 NFT를 통해 '디지털 진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과거에는 명품 패션 브랜드 등에만 존재했던 진품 인증 수요가 이제 예술품 영역으로도 넘어올 거라는 전망이다.

"가상자산이나  NFT 시장에 사람들이 처음 발을 들이려면 진입장벽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진입장벽을 뚫고 들어온 분들이라면 자신이 투자한 예술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래서 더욱 스캠에 예민하게 굴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거고요. '내가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는데, 가짜에게 손해를 볼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NFT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 디지털 세상에서도 원본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각인시켜 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이 콘텐츠는 '디지털리유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리유어스는 다양한 NFT 아트를 이야기합니다. 

정인선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입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여간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블록체인, 가상자산, NFT를 취재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날엔 달리기와 요가를 합니다. 소량의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클레이(KLAY), 솔라나(SOL), 샌드(SAND), 페이코인(PCI)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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