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우리나라는 사행성 게임 전체를 규제하고 있는데, ‘사행성 게임을 풀어달라’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한 사행성 게임만 풀어달라’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은 지난 11일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인터뷰에서 한국 규제 상황에서 "P2E만 허용해달라"는 건 논리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김승주 교수는 "P2E를 막으면 블록체인 진흥이 안 된다고 한다"면서 "그러면 (코인 금지한) 중국은 블록체인 논문이 하나도 안 나와야 하는데, 중국에서 블록체인 논문, 특허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블록체인 서비스가 성공하려면, 비즈니스 구조가 협동조합과 같은 탈중앙화형이며 여러 국가를 넘나드는 글로벌 사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인 김 교수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암호기술팀장과 IT보안평가팀장으로 근무한 암호 보안 전문가다. 한국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강연을 가장 많이 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들 때 사이퍼펑크(cypherpunk) 정신이 반영됐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 수용자들은 그들의 철학에 동의해서 코인을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비트코인 초창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정부와 거대 IT 기업의 통제를 보안 기술을 이용해서 벗어나겠다’는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젠 가격이 얼마 오르느냐에 관심이 더 있다.  

근데 이런 철학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누가 투자자냐’가 아니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같은 것들이다. 이제는 실명 확인을 다 해야 된다. 오히려 사이퍼 펑크의 철학을 훼손시키는 건 그런 것들이다.

 

-3월25일부터 한국에서 트래블룰(자금이동규칙)이 의무화된다. 기존 금융의 제도를 코인에도 적용하는 건데.

지금 코인원이 하듯이 꼭 화이트 리스트 방식만 써야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여러 방법도 있다. 그런데 제일 강도 높고, 쉬운 방법을 선택한 거다. ‘화이트 리스트를 왜 씁니까’에 대한 답변의 책임은 코인원한테 있다. 

거래소들이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김치 코인'들 상장 폐지할 때도 폐지 이유를 제대로 설명 못했다. 그러니까 ‘정부가 압력을 넣은 것 아니냐’는 별별 얘기가 다 나온다. 먼저 설명을 해야 된다.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수단을 채택해 놓고 마치 정부 때문에 그랬다는 듯이 뉘앙스를 풍기는 건 문제라고 본다. 만약 정부가 시켜서 했다면 그 공은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이나 언론이 또 정부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런 거 하다 찍히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그런 거 저항하라고 사람들이 대형 거래소 쓰는 거 아닌가?

 

-트래블룰처럼 코인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가격 상승률이 낮아지지 않을까?

어느 정도 제도화는 있어야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투명해질 거다. 그렇게 되면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확 뛰어오르는 일확천금은 없어질 수 있다.

당연히 그 과정을 거쳐야 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뿐만 아니라 NFT도 그렇게 될 거다.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다. 닷컴 버블 때도 똑같았다.

주식처럼 상장, 상장폐지할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생기고, 부정행위는 통제하면서 시장이 더 투명해질 수 있다. 참여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미국이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한 건 ‘많이 투명해졌구나’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체계가 됐구나’ 판단이 서서 승인한 거지, 비트코인 사용자가 많아져서 해준 건 아니다.

 

-코인은 해외 송금이 가능해서 외환거래법과 같은 규제를 우회한다.

외환거래법을 우회하는 걸 탈중앙화 정신과 붙이면 안 된다고 본다. 사실은 탈중앙화를 실현하려고 외국에 투자하는 건 아니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예전에 한 국내 대형 거래소 대표가 ‘실명 전환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큰 손들은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걸 싫어한다’는 거였다. 그 말은 부정한 자금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다는 얘기다. 사실 그 수요 때문에 가격이 굉장히 올라간 거긴 하다. 

하지만 그런 건 탈중앙화 정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규제를 통해서 없애는 건 바람직하다. 세금 탈루의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왕창 사는 게 탈중앙화 정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 

 

-교수님이 생각하는 탈중화 정신은 무엇인가?

제가 생각하는 탈중앙화는 ‘정부가 찍어내고 싶을 때마다 돈 찍어내서 부자들은 더 부자 만들고 서민은 계속 가난하게 하는 것, 인플레이션 조장하고 실제로 금융사고 났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것에서 탈피하자’다. 추적당하지 않아서 재산을 은닉할 수 있다가 탈중앙화 정신은 아니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김승주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장.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암호화폐의 기본 기능이 익명성이라 세금 탈루나 마약 거래에 이용되기 굉장히 좋은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좋은 암호를 만들었더니 테러범도 쓰더라. 그게 암호 기술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걸 방치해선 안 된다. 그래서 암호 분야에서는 상충되는 이 두가지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암호학에서는 ‘페어 크립토그래피(공정한 암호학)’이라고 부른다. 상충되는 두 가지를 기술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법원, 시민단체 등 세명 중에서 과반수가 동의하면 마스터키가 복구되게끔 만드는 거다.

암호화폐도 익명성을 통해서 나 자신을 지키려고 나왔지만, 나쁜 일에도 쓰인다. 거기에 맞는 기술적인 수단, 제도적인 장치가 나올 거다. 역사적으로 암호가 정반합 정반합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왔다. 암호화폐도 그럴 거다.

이런 논란은 굉장히 오래 됐다. RSA 콘퍼런스(세계 최대 규모 사이버보안 콘퍼런스, RSAC) 가면 단골 주제다. 애플 등이 보안 기술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게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를 가지고 쟁쟁한 암호학자들이 토론한다. 

‘절대로 정부에 협조하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이건 해줘야 된다’로 나뉜다. 그런 게 이슈가 되면 언론이 여론조사해서 발표한다. 미국 암호학에서는 충돌하는 두 가치를 어떻게 할 거냐를 공론화하면서 계속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주코 윌콕스(Zooko Wilcox-O’Hearn) 지캐시(zcash) 대표가 2019년 4월2일 서울 강남구 코빗 라운지에서 열린 지캐시 밋업에 지캐시의 거래정보 암호화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주코 윌콕스(Zooko Wilcox-O’Hearn) 지캐시(zcash) 대표가 2019년 4월2일 서울 강남구 코빗 라운지에서 열린 지캐시 밋업에 지캐시의 거래정보 암호화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 코리아

-2019년 지캐시(Zcash) 창업자 주코 윌콕스가 한국에서 밋업을 했다. 익명성이 강화된 코인이지만 ‘정부가 요청하면 송신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해서, 당시 일부 한국 참가자들이 의아해했다. 

그래도 그런 얘기를 해야 된다. 그렇게 계속 접점을 찾아가야 된다. 2014년 카카오 검열 논란 때 텔레그램으로 많이 옮겨갔다. 근데 N번방 사건 터지고 ‘텔레그램 저런 무책임한 기업이 있나’ 이러면서 텔레그램 총 탈퇴 운동이 벌어졌다. 여론이란 그런 거다. 자꾸 양쪽으로 알려서 해결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그 사람(윌콕스)이 그걸 몰라서 그 얘기를 했겠나. 그런 물음을 자꾸 띄우는 거다. 암호학적으로는 접점을 찾아가는 기술이 존재한다. 그런데 일반인은 이해가 적으니 ‘백도어’란 단어에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

여행가방을 보면 TSA(미국 연방 교통안전국) 열쇠구멍이 있다. 미국 정부가 테러범 잡기 위해 마스터 키를 넣는 건데 그게 페어 크립토그래피다. 그 사람이 하자는 게 그거다. 그러면 여행가방은 되고 코인에서 해선 안 되나? 

여행가방에 있는 TSA 열쇠구멍. 출처=Sun Lingyan/Unsplash
여행가방에 있는 TSA 열쇠구멍. 출처=Sun Lingyan/Unsplash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는 코인뿐일까. 물류 트레킹, 인터넷 투표 등에 쓰일 수 있다고 했지만, 상용화돼서 성공한 건 코인밖에 없는 것 같다.

블록체인을 코인에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자간 보안 계산(secure multi-party computation)에도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효율적이라는 연구가 있다. 블록체인의 응용 분야는 굉장히 많다. 그런데 질문을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이 뭡니까?’라고 하면 가시적으로 코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2017, 2018년 많은 기업이 블록체인 도입을 검토했다가 ‘전환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접었다.

중앙 집중형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데 기업이 그걸 블록체인으로 뭐 하러 바꾸겠나. 블록체인으로 바꾼다는 건 블록체인의 가치, 탈중앙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러면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이 협동조합형 모델 비슷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이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이익을 공유하면 그게 협동조합이다. 그런데 비즈니스 구조는 협동조합으로 안 바꾸면서, 시스템만 블록체인으로 바꾸려다 보니까 ‘이럴 거면 굳이 블록체인 왜 씁니까’가 나오는 거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DID(분산ID, Decentralized Identity) 서비스다. 나는 컨소시엄 블록체인을 욕하는 건 아니다. 근데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제대로 들어가려면 그 구성원들이 서로 견제가 가능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계열사끼리 나눠 가지면 그게 되겠나.

 

-해운사 머스크(Maersk)가 하려는 물류 트래킹은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블록체인 사업이 성공하려면 조건이 있다. 탈중앙화 철학이 제대로 반영됐는가? 즉 구성원 간에 견제함으로써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가가 일단 고려돼야 한다. 그 다음에 내 서비스가 글로벌 비즈니스인지를 봐야 한다. 

정부가 하는 여러 블록체인 시범 사업이 있다. 근데 우리나라는 전자정보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거기에 메뉴 하나 만들면 된다. 굳이 블록체인을 쓸 필요가 없다. 우리 국민은 정부는 ‘부패한 자들이라 믿지 못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믿고 연말정산도 다 하는 거다. 이런 나라에서는 기존 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런데 글로벌로 가면 좀 달라진다. 물류에 괜찮아 보이는 건 그 산업이 여러 나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여러 운송업체를 끌어들이려면 중립지대 표준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블록체인이 먹힌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에서 세금 정산 시스템을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만들려면 중앙 집중형으로 만들 수가 없다. 나라를 넘나들고, 서로 믿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글로벌한 사업이어야 한다. 

정부가 주민등록증 대신, DID 모바일 신분증으로 제주도 갈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내가 장관님에게 ‘모바일 신분증 사업을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같이 하자고 해서, 여권 없이 다니게 해야 사람들이 DID가 뭔지 알게 됩니다’라고 했다. 근데 결국 그렇게 못했다. 

블록체인 사업을 하려면 글로벌하게 해야 한다. 물론 힘들다. 그런데 이더리움 재단 같은 곳은 그렇게 크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블록체인으로 할 비즈니스가 없는 게 아니고, 의미 있는 비즈니스가 많은데 힘드니까 안 하는 거다.

중앙 집중된 비즈니스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술만 블록체인으로 바꾸려고 하니 ‘의미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쓸데없는 데 돈 쓰는 거다.

 

-게임 업계에서 화제인 플레이투언(play-to-earn, P2E)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관심 있다. 근데 저는 블록체인 산업 진흥을 위해서 P2E를 풀어달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행성 게임 전체를 규제하고 있는데, ‘사행성 게임을 풀어달라’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한 사행성 게임만 풀어달라’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걸 막으면 블록체인 진흥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코인 금지한) 중국은 블록체인 논문이 하나도 안 나와야 하는데, 중국에서 블록체인 논문, 특허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이더리움 2.0 전환은 어떻게 보나?

꽤 좋게 보고 있다. 레이어드 솔루션 등을 하다 보면 탈중앙화는 어느 정도 훼손이 되긴 할 거다. 그래도 이렇게 좀 대중적인 것들이 나와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줘야 한다. 

이게 성공했을 때 플랫폼 기능이 있는 카르다노 등 블록체인도 같이 경쟁하게 된다. 그렇게 거대 사업자들이 나타나면서 마치 애플, 구글이 경쟁하듯이 좋은 서비스들이 나올 수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비트코인 보다 이더리움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데 가격 차이가 크다고 본다.

 

-암호학자로서 코인 투자자들한테 조언을 해주신다면.

암호화폐 투자하시는 분들이 주식 투자할 때 정도만큼의 공부는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테슬라를 투자하면 배터리에 대해서는 좀 보지 않나.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된 한 코인은 백서를 보면 투자를 절대 할 수가 없을 수준이다. 

한국엔 기술을 설명해 주는 매체가 너무 부족하다. 유튜브에도 차트 분석 방송만 많다. 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에 기술을 분석하고 투자해야 한다. 최소한 주식만큼만이라도 공부하고 투자했으면 좋겠다.


김승주 교수는 코인데스크 코리아에 매달 암호학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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