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and media artist Kevin McCoy, who created the first NFT ever. Source: All photos provided by Kevin McCoy.
Digital and media artist Kevin McCoy, who created the first NFT ever. Source: All photos provided by Kevin McCoy.

뉴욕대학교에서 예술을 가르치는 디지털 아티스트 겸 미디어 아티스트 케빈 맥코이는 세계 최초로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맥코이는 지난 2014년 사상 첫 NFT '퀀텀'을 만들었다. 이어 개발자 애닐 대시와 함께 퀀텀을 고도화했다. 맥코이와 대시는 이를 네임코인 블록체인에서 민팅했다.

당시 두 사람은 요즘 NFT 열성 지지자들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팔고, 그걸 추적할 수 있게 하자.'

맥코이는 원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후 예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글로 하는 작업보다 이미지로 하는 작업이 더 잘 맞았다.

지난해 말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았다. 그는 집의 일부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주 공간과 작업실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분리돼 있었다. 그가 사는 동네 윌리엄스버그는 '힙한' 곳이었고, 곳곳에 멋진 식당이 즐비했다.

예술에 처음 어떻게 빠져들게 됐는지부터 물었다. 그는 1990년대 철학 관련 작업을 위해 파리에 머물면서, 실험적인 영상 제작자들과 어울린 게 계기였다고 답했다. 

"그들의 영상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건 언어가 필요 없는 예술이구나'라고 느꼈어요." 

파리에서의 경험은 혼합형 미디어, 그리고 장르 뒤섞기에 대한 맥코이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당시는 예술과 기술이 막 섞여들기 시작한 때였다.

맥코이는 전통 예술 분야에 몸 담은 적이 없었기에, 예술이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실험에 완전히 열려 있었던 것이다.

"예술가로서 동시대의 도구를 활용해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맥코이는 또한 시스템, 그리고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와 관계 맺는 방식에 늘 관심을 가져 왔다.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2010년. 하지만 그때만 해도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는 다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풀어놨다. 당시 비트코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온라인 토론은 '비트코인 토크'라는 이름의 포럼에서 이뤄졌다. 

McCoy's studio in Brooklyn
McCoy's studio in Brooklyn

"사토시가 아주 엄청난 걸 만들었어요. (비트코인은) 디지털 형태로 어디에나, 동시에 고유하고 희소하며 소유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잖아요. 비트코인은 개방형인 동시에 폐쇄형이기도 해요.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비트코인과) 비슷한 기술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어요." 

비트코인을 만나 눈이 번쩍 뜨인 맥코이는 2013년 하반기 내내 사토시의 아이디어를 디지털 아트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했다.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는 일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었다.

'퀀텀'을 처음 만든 후 맥코이는 이를 고도화하기 위해 뉴욕 기반 디지털 예술 조직 '라이좀(Rhizome)'에 손을 뻗었다. 그들은 맥코이에게 아티스트와 기술 분야 종사자들이 어울리는 행사인 '세븐온세븐'에 가 보라고 권했다.

바로 여기서 맥코이는 애닐 대시를 만나 사상 최초의 NFT를 발행하게 된다. 맥코이는 그와의 첫 만남을 소개팅에 비유했다.

대시는 맥코이가 '퀀텀'의 프로토콜을 짜도록 도와줬다. 특정 종류의 메타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최초 제작자와 소유권을 검증하는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그들은 당시 그러한 종류의 메타데이터를 기록하기에 네임코인 블록체인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맥코이와 대시는 그들의 작품 '퀀텀'을 처음 발표했다.

"(퀀텀의) 원본 이미지는 제 디지털 스케치북에 있던 거였어요. 코드를 활용해 작업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쓰는 '프로세싱'이라는 툴을 이용해서 프로그래밍을 했죠.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맥코이는 NFT라는 개념을 처음 떠올린 게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였다는 사실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지의 현금화'라는 표현을 썼다. 여러 우연 끝에 최초의 NFT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기반으로 탄생하게 됐다.

"만약 최초의 NFT를 만든 게 기술자였다면 아마 비트코인 이미지같은 걸로 만들었겠죠. 아니면 누군가의 발 사진이라던가."

7년이 지난 2021년 6월 '퀀텀'은 소더비 경매에서 140만달러에 낙찰됐다.

An image of "Quantum," the first ever NFT. McCoy prefers to call them "monetized graphics," or "monegraphs." Source: mccoyspace.com
An image of "Quantum," the first ever NFT. McCoy prefers to call them "monetized graphics," or "monegraphs." Source: mccoyspace.com

맥코이는 2021년 퀀텀의 후속작인 '퀀텀 점프'를 만들었다.

2014년 '퀀텀'이 NFT 기술의 길을 닦았듯이, 맥코이는 '퀀텀 점프'를 통해 NFT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현재 시점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퀀텀 점프'는 스마트 계약을 이용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는 제너레이티브 예술 작품이다.

"작품을 소유한 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예술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품과 소유자 사이의 관계를 정적인 게 아닌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걸로 보는 거죠." 

맥코이의 코딩 실력이 궁금해졌다.

그는 "배워야 하는 일은 결국 배우게끔 되어 있다"고 답했다. 코딩에 대한 모든 지식을 혼자서 습득했다는 의미였다.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툴은 이미 도처에 있어요.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당장 뛰어들어 시간 투자만 하면 되죠."

그럼에도 끝끝내 맥코이는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가이고, 기술은 그의 창작 활동을 돕는 수단일 뿐이다.

그는 트위터 프로필에도 이렇게 적어 뒀다.

"내가 사고하고 기술이 행한다."

"I think and the machines do."
"I think and the machines do."

맥코이는 훗날 NFT가 이토록 대중화 될 줄 미리 알았을까?

"NFT가 엄청난 아이디어라는 건 알았어요. 디지털 아트가 하나의 새로운 산업 분야로 커지길 바라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변화가 어떤 식으로 시작될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맥코이는 2014년과 2015년, 2016년을 몽땅 예술 작품 토큰화라는 아이디어를 전파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더리움의 시대가 채 도래하기 전이었다.

그는 지쳐 나가 떨어졌다. 그런 뒤에야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싹을 틔웠고, 결국 맥코이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게 됐다.

그 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다.

맥코이와 달리 애닐 대시는 NFT 산업과 그 태동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2021년 4월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가들에게 힘을 불어넣겠다는 우리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상업적 욕망으로 가득찬 큰 거품만 만들어졌을 뿐이다." 

대시는 최초의 NFT가 일종의 지름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체 이미지 파일을 담기엔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는 용량이 너무 적어서 해당 이미지의 링크를 (블록체인에) 저장해야 했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시간이 지나면 블록체인에 작품 전체를 저장할만큼 기술이 발전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대시는 말한다.

그는 "7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모든 유명 NFT 거래소들은 여전히 예전의 그 지름길 전략을 쓰고 있다"고 통탄하며 말했다.

대시는 또한 NFT 작가들이 특정 플랫폼이나 기업의 성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플랫폼이 성공하지 못하면 작가들이 올린 작품 또한 사라지게 된다.

이런 회의론에 대해 맥코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대시가 과거 개방형 인터넷 초기 단계에 전문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서비스가 망하거나 중앙화된 거대 기업에 잠식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대시가 NFT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에도 영향을 줬을 거란 이야기다. 

맥코이는 NFT가 반드시 예술가를 보호하진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거엔 불가능했던 일을 NFT가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시와 마찬가지로 저도 요즘 나온 여러 플랫폼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다들 새로운 중개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더 나은 상황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술이 제공하는 여러 선택지를 통해 탈중앙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택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거죠. 어떻게 굴러갈지, 지켜보면 알게 되겠죠."

맥코이는 언제나 '될대로 되라'는 태도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신기술에는 언제나 저마다의 국면이 있다. 물론 블록체인 분야에 오래 몸담다보면 별의 별 종류의 사기꾼을 다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술은 진짜예요. 결국 저는 개방형의, 무허가형 시스템을 지지하게 되겠죠." 

 

다음 편에 계속

 영어 기사: 정인선 코인데스크 코리아 번역

*이 콘텐츠는 '디지털리유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리유어스’는 코인데스크 코리아와 함께 하는 NFT 아트 매거진입니다. 디지털리유어스에는 다양한 NFT 아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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