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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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평소 꽤 읽을 만한 글을 올리던 찰리 와젤의 뉴스레터 ‘갤럭시 브레인(Galaxy Brain)’이 도발적인 헤드라인을 던졌다. '가상자산이 2008년 금융위기를 재현할 것인가?'라는 제목이었다.

이는 당연히 수사 의문문이었다. 디애틀랜틱(The Atlantic)에서 뉴스레터를 내고 있는 와젤은 아메리칸대학교 법학과 교수 힐러리 J. 앨런과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앨런은 최근 발표한 그의 논문을 언급하며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이 2000년대 말 금융 위기가 닥치기 전 그림자 금융이 저지른 실수를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지는 대출, 보험, 결제에서 디파이가 제안하는 혁신적인 새 모델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마치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나타난 부동산 버블 당시 신용부도스왑(CDS)과 부채담보부증권(CDO)이 리스크를 야기했던 것처럼 다가올 리스크들을 분명하게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복잡성이 초래하는 불투명성이 호황기엔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게 해 버블을 만들고, 불황기엔 리스크를 과대평가하게 해 패닉을 악화시킬 가능성을 키운다”고 말했다.

앨런은 가상자산이 주류 금융 시스템에 더 통합되기 전에 미국 정부가 개입해 가상자산 업계를 규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 댑(Dapp)의 경우 서비스 운영 허가를 받도록 하고, 설립자와 개발자 모두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시 법집행 조치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픈소스 코더들을 단속 대상으로 보는 것이 혁신에 위협이 된다고 보는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는 이 같은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우선 나는 앨런이 디파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견 옳다고 보며, 그가 금융위기 때와의 유사점을 제시한 부분에 어느 정도 타당성과 있다고 인정한다.

일반인들이 디파이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월가의 금융공학자들이 CDS와 CDO라는 내부를 알기 힘든 블랙박스를 이용해 결국 은행 고객들에게 피해를 준 것처럼, 복잡성이란 특징은 디파이 프로젝트 설립자들에게 비대칭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과도한 신뢰를 가진 투자자들이 러그풀(rug pull)이나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흔히 겪는 이유다.

앨런이 제대로 본 또 다른 점은 현재 디파이 업계에서 2008년 버블 때와 매우 유사한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고, 신뢰를 받는 중개주체들을 중심으로 한 디파이의 중앙화 수준이 탈중앙화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거다.

그럼에도 앨런의 관점에는 중대한 정책적 오류를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은행. 출처=Expect Best/Pexels
은행. 출처=Expect Best/Pexels

모두가 알지만 함구하는 문제

2020년대의 디파이 혁신가들과 2000년대 월가 은행가들 사이의 큰 차이점은 후자의 경우 전자(가상자산 개발자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종합적인 정치적 틀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은행은 부분지급준비금 제도를 통해 돈을 만들어낼 권한이 있어 정부가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유동성을 활용할 수 있는 특권에서 나오는 특별히 허가된 지위다. 정부와 은행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에 있으며, 때론 이 둘이 상호의존성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위기 전에 불거진 ‘대마불사’ 문제였다. 대마불사란 시스템적으로 상호 연결된 대형 은행 하나가 무너지면 경제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고, 이런 은행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언제나 정부에서 나서서 이들을 구제할 수밖에는 없다는 개념으로, 지난 2008년 우리가 겪은 상황이 정확히 이러했다.

2000년대 당시 대대적인 시장 왜곡을 부추겼던 건 도덕적 해이 문제였다.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은행들은 비대칭 위험에 빠져 있었다. 모기지 시장이 활황일 때는 성공의 단 열매를 즐겼고, 그렇지 않을 때 쓴 대가는 없었다. 그 결과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는 뒤틀리고 왜곡된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이와 관련해 앨런은 열성적인 가상자산 지지자들을 순진한 사람들이라 일축하며, 그들이 디파이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가 바로 구제금융에 대한 경멸 때문이라 말했다. 실제 2008년엔 연방정부에서 나서서 금융 시스템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 같은 앨런의 발언이 요점을 완전히 잘못짚은 거라 생각한다.

나처럼 2008년 구제금융이 차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원인을 제공한 의존성에 기반한 대마불사 시스템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이게 바로 가상자산에 희망이 있는 이유다. 그동안 경제 자원과 정치적 자본을 너무 오랫동안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온 과도한 권력을 지닌 중개주체들에게 우리의 금융 시스템이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완전한 탈중앙화라는 이상적인 기준을 달성할 필요는 없다(나는 실제 가상자산의 탈중앙화 수준이 내러티브가 주장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며 앨런과 같은 이들이 꼬투리 잡기식 비판을 늘어놓는 게 정말 지겹다고 생각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 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대신 기존 시스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과 혁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개방성을 갖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말은 일부 특정 요소들은 탈중앙화된 비허가형으로 개발하고, 다른 요소들은 신뢰할 만한 기관들의 참여를 통해 적절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모든 기관들이 어떤 형태로든 시장의 압박을 느낄 수 있도록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출처=Lo lo/Unsplash
출처=Lo lo/Unsplash

쉬운 혁신 vs 어려운 혁신

복잡성에 의한 혁신이란 비교가 은행과 디파이 업계 모두에서 타당하지 않은 이유다. 은행에는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허가된 독점권(이 역할이 너무 중요해서 은행에 손실이 발생할 시 무조건 세금으로 그들을 보호해 준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혁신은 디파이 개발자들과는 매우 다른 장려책과 견제와 균형의 양상을 보인다.

은행들은 시장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리스크 가능성을 재지 않고 레버리지 확대와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해 CDS, CDO, CDO 스퀘어드 상품 등을 개발할 여유가 있었다.

반면 디파이 개발자들은 훨씬 더 가변적이고 어려운 시장환경에 놓여있다. 은행들처럼 세금에 의한 무조건적인 보호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코드의 오픈소스 레고 결합성과 낮은 진입장벽이라는 디파이의 핵심적인 설계 요소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란 충분한 코딩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정부나 다른 중개기관의 허가 없이도 새로운 자동 시장조성자(AMM)나 거버넌스 토큰, 스테이블 코인 알고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현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체들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을 뜻한다.

지난 2년간 디파이 업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라. 먼저 메이커다오(MakerDAO)가 시장에서 큰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그 다음은 컴파운드(Compound), 에이브(Aave), 스시스왑(Sushi Swap)을 거쳐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 같은 하이브리드 게임/디파이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다.

모두 급부상한 지 단 몇 개월 만에 성공을 거뒀다. 이들을 모기지 위기에서 살아남은 승자인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와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비교해보라. 이 기업들은 각각 1799년과 1904년에 설립됐다.

이런 디파이의 역동성은 계속 유지될 수만 있다면 앨런이 우려하는 것처럼 2000년대에 금융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린 시스템적 리스크를 야기하는 경직성을 막아줄 것이다. 이는 시장이 계속해서 다양한 승자와 패자들의 토큰 가격을 조정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건 가격 신호와 관련돼 있다.

또한 디파이가 완벽히 탈중앙화되지 않았고 일반인들 시각에서는 지나치게 복잡하더라도 디파이 상품의 최종 이용자들은 은행 고객들보다 개발과 관련해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용자 다수가 거버넌스 토큰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행동을 통해 디파이 개발자들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끔 시장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 점은 은행가들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자들이 큰돈을 벌 동안 러그풀이나 코드 위반 등으로 인해 계속해서 돈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2000년대 금융 시스템을 곤경에 빠뜨린 시스템적인 문제와는 사뭇 다르다. 2000년대에는 모든 사람들과 위험자산이 일제히 막대한 손해를 보기 시작하기 전 수년간 전부 호황을 누렸었다.

가장 중요한 건 실패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개발자들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게 하는 장려책이 된다는 거다. 이 점이 많은 끔찍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디파이 시스템이 지금껏 꾸준히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같은 시장 주도의 균형에 위협이 되는 건 무엇일까? 바로 잘못된 규제 모델이다.

디파이에 시스템적 리스크를 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도덕적 해이에 기반한 대출 모델을 활용하는 은행들이 오픈소스 개발자들보다 유리한 입지에 서게 하고, 개발자들에게 은행들은 이미 특권으로 누리고 있는 사업 허가를 받도록 하는 거다. 시장을 중심으로 진정한 혁신을 이루는 데까지 많은 비용이 들게 만들고, 정부의 비호와 세금을 통한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착취적인 단기 혁신에 사실상 리스크가 없게 만들면 된다.

디파이 업계에 있는 중앙화된 서비스 제공기업들이 금융 안정성 유지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규정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 미 의회에서 스테이블 코인과 디파이, 가상자산 업계 전체를 규제할 목적으로 발의된 여러 상충되는 법안들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교훈이 아닌 올바른 교훈 말이다.

영어기사: 박소현 번역, 임준혁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Michael J Casey Michael J. Casey is CoinDesk's chief content officer. Previously, Casey was the CEO of Streambed Media, a company he cofounded to develop provenance data for digital content. He was also a senior advisor at MIT Media Labs'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a senior lecturer at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Prior to joining MIT, Casey spent 18 years at The Wall Street Journal, where his last position was as a senior columnist covering global economic affairs. Casey has authored five books, including "The Age of Cryptocurrency: How Bitcoin and Digital Money are Challenging the Global Economic Order" and "The Truth Machine: The Blockchain and the Future of Everything," both co-authored with Paul Vigna. Upon joining CoinDesk full time, Casey resigned from a variety of paid advisory positions. He maintains unpaid posts as an advisor to not-for-profit organizations, including MIT Media Lab's Digital Currency Initiative and The Deep Trust Alliance. He is a shareholder and non-executive chairman of Streambed Media. Casey owns a small amount of bit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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