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Westall, 다모클레스의 칼(1812). 출처=Ackland Museum
Richard Westall, 다모클레스의 칼(1812). 출처=Ackland Museum

최근 미국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또다시 가상자산이 증권이라고 규정한 탓이다.

업계는 가상자산의 성격 규정 권한을 갖는 SEC의 손끝에 오랫동안 촉각을 세워왔다. 코인에 ‘증권’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다. 만약 증권이 된다면, 어떤 코인이 증권으로 판명 날지도 문제다. 업계는 그간 많은 담론을 쏟아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은 한발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논의 흐름을 정리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1. 이번 사건의 시작은?

사건의 시작은 7월21일 미 연방검찰이 전직 코인베이스 프로덕트매니저 등 3명을 구속기소한 내부자 거래 사건이었다. 증권 관련 대표적 금융범죄인 내부자 거래 혐의가 가상자산에 처음으로 적용된 사건이다.

같은 날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 사건과 관련된 고소장에서, 가상자산 9개 종목(AMP, RLY, DDX, XYO, RGT, LCX, POWR, DFX, KROM)을 증권으로 규정했다. 코인베이스가 SEC에 등록되지 않은 증권을 거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코인베이스는 즉각 SEC에 가상자산에 대한 새로운 규제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청원을 제출했다. SEC가 증권이라고 한 마당에 왜? 코인베이스 대변인에 따르면, 코인베이스는 지난 몇 달 동안 이 청원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SEC가 한발 빨랐던 셈이다.

 

2. 증권이 된다는 것은?

SEC는 1946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확립된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통해 증권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①투자되는 자금이 있어야 하고 투자한 자금이 공동이 출자하여 만든 기업에 투입돼야 하며 그 투자금에 대한 기대 이익이 있어야 하고투자자가 기업의 이익 창출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으로 인해 투자 이익이 발생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증권이 된다. 결국 핵심은 ‘이익을 약속하고 자금을 모집했는가’와 ‘투자자는 이익을 기대하며 돈을 넣었는가’로 압축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SEC는 가상자산 9종을 증권으로 규정하면서 각각의 하위 테스트 결과를 제시했다.

SE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해서는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한 상태다. 비트코인의 경우, 2019년 제이 클레이튼 당시 SEC 위원장이 “암호화폐(cryptocurrencies)는 주권 통화를 대체한다. 엔, 달러, 유로를 비트코인으로 대체한다. 그런 화폐는 증권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SEC를 포함해 미 규제 당국은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 수단은 아니라는 이유로 증권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더리움에 대해선, 2018년 윌리엄 힌먼 당시 SEC 기업금융 담당 국장이 “처음 만들 때의 펀드레이징을 제외하면, 지금의 이더리움 네트워크나 탈중화된 구조, 이더의 거래 등은 증권 거래라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애초 이더리움 재단이 모금을 위해 발행했을 때는 증권 성격에 부합했지만, 그 상태가 탈중앙화하면서 더 이상 증권이 아닌 성격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도 이더리움을 상품으로 간주하고, 시카고상업거래소(CME)도 이더리움 선물 거래를 허용한다.

다만 SEC는 XRP(리플)를 증권이라고 규정해 소송이 진행중이다. SEC는 2020년 12월 리플랩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리플랩스가 XRP 발행 때 투자자들에게 XRP의 가치 상승을 홍보하면서 투자를 유치했다고 주장했다. 리플은 SEC 위원장 출신 메리 조 화이트를 변호사로 선임해 반론을 펼치고 있다.

 

3. 증권이 된 가상자산은 어떻게 되나?

가상자산이 증권이 되면 투자자 보호 조치가 한층 강화된다. 코인 발행사와 가상자산 거래소는 까다로운 규제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투명한 운영과 심사를 보장해야 한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많이 복잡해질 수 있다. 중소형 거래소들은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SEC를 비롯한 규제 당국의 지속적인 조사 대상이 될 것이며, 문제가 생기면 벌금 등 각종 처벌은 물론 범죄 혐의로 기소될 위험도 높아진다.

이런 맥락에서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들은 대체로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판명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늘어난 규제 부담으로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들이 SEC 기준대로 각종 정보를 공개하게 되면, 투자 시장은 투명해지고 그만큼 투자자들은 보호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4. 증권이 싫다면, 대안은 뭔가?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와 크립토 옹호론자들은 SEC의 규제 동향에 반대하면서 ‘낡은 법규로 새로운 산업을 규제하려 한다’는 얘기를 곧잘 하지만, 그 핵심을 보면 가상자산을 증권이 아니라 상품(commodity)으로 다뤄달라는 주장이다.

미 의회에서도 친크립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초당파 의원들이 가상자산은 증권보다 상품에 가까우니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관할하도록 해야 한다는 법안을 지난 6월 발의한 바 있다. 다만, 이 법안은 실제 통과되기보다는 향후 규제안 논의를 위한 정지작업이란 게 중론이다.

CFTC는 애초 미국 농산품의 선물거래를 통해 농민들이 가뭄 등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됐다. 이후 다양한 상품의 선물거래를 관장하게 됐고, 사기나 조작행위가 있으면 강제조치를 취해왔다. 지금은 일부 가상자산 선물거래도 맡고 있어, 크립토 옹호론자들은 이미 경험이 있는 CFTC가 SEC보다 더 나은 규제를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CFTC는 상품 및 그 파생상품의 거래를 규제할뿐, 자금모집 과정 등 증권 성격이 있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CFTC에는 생산자(농민,기업 등)가 파생상품을 이용해 생산품의 가격 변동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대응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반면, SEC는 1929년 많은 주식이 휴지조각이 돼버렸던 대공황 때 설립됐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에 막대한 양의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관리하는 규제기관이다. SEC에게는 일반 투자자들이 왜 투자에 나섰는지, 투자 수익을 약속했기 때문인지 등 질문이 더 중요하다.

탄생 배경에서 드러나듯, CFTC의 상품에 대한 규제는 SEC의 증권에 대한 규제보다 덜 엄격할 수밖에 없다. 크립토 옹호론자들이 SEC가 아닌 CFTC의 관리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론자들은 소액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SEC가 증권을 다루듯이 가상자산을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5. 그동안은 규제를 하지 않았나?

폴리티코는 전문가를 인용해,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크립토 규제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업계의 머리 위에서 위태롭게 존재해왔다고 평가했다. 규제 기준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는 SEC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 선을 넘었다 싶으면 기업에 회초리를 드는 식이어서 불만이 많다. 지난 2월 SEC가 가상자산 대출 플랫폼 블록파이에 미등록 유가증권 발행을 이유로 벌금 5천만달러를 부과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SEC는 “가상자산 대출 플랫폼과 관련한 첫 사례”라고 했지만, 업계 입장에서는 이런 강제적 조치가 나오고 나서야 법적 기준선이 어디인지를 알게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 같은 모호성 덕분에 그동안 많은 기업과 프로젝트가 규제를 우회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창업가들은 나름의 법률 해석으로 회색지대에서 창업을 했고, 규제기관들도 나름의 해석으로 이제 법률 집행을 위해 진입하고 있으며, 어느 시점이 되면 의회가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켜 드디어 새로운 규제를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6. 앞으로 어떻게 되나?

미국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서명한 가상자산 행정명령은 ‘잠재적 이익의 활용’과 ‘충분한 감독 필요성’을 동시에 강조했지만, 증권인지 상품인지에 대한 답변이 되지는 못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등록되도록 적합한 규제 틀을 만들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한 바 없다.

다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SEC는 '많은 가상자산이 증권 성격이며 대부분 거래소들이 이를 신고하지 않고 상장했다'고 본다는 점이다. SEC의 겐슬러 위원장도, 전임자인 제이 클레이튼 전 위원장도 그런 시각을 공유했다.

이런 맥락에서 어떤 거래소나 어떤 발행사도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신고·등록한 적이 없으므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코인베이스 내부자거래 사건과 SEC의 XRP 소송 결과는 중요하다. 어떤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보고, 어떤 가상자산은 상품으로 보는지 기준이 보다 명확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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