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에 이어 증권형 토큰이 자본시장의 이슈로 떠올랐다. 어떤 가상자산(암호화폐)이 증권형 토큰에 해당하는지 판단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이 연내 발표할 예정이어서 가상자산 업계는 물론 증권사 등 금융투자 업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상자산은 크게 투자성을 지닌 증권형과 결제수단처럼 사용되는 비증권형 코인으로 나뉜다. 미국 금융당국이 증권성을 판단할 때는 연방대법원 판례인 ‘하우이 테스트’가 기준이 된다. 금전 투자, 공동 사업, 투자에 따른 수익 기대, 투자의 성패가 기업의 경영자 등 타인의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지 여부 등을 따진다. 투자자가 이익을 기대하고 돈을 넣고, 사업 주체가 이익을 약속하면 증권으로 볼 수 있다. 193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대규모 오렌지 농장을 운영하던 하우이컴퍼니라는 회사가 진행한 농장 분양 사건에서 유래됐다. 하우이컴퍼니는 오렌지 농장의 절반을 직접 경작하고, 나머지 절반은 여러 사람에게 분할 매각한 뒤 재임대받아 재배하는 방식을 진행했다. 1946년 미국 대법원은 이 거래를 투자계약으로 보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지금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가상자산공개(ICO)를 통해 자금을 모집한 대부분의 코인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증권성 논란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으로 평가된다. 처음 만든 주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다, 오직 채굴을 통해서만 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장은 공개 석상에서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본다. (다른 암호화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여러차례 발언했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지난달 15일 더머지(The Merge) 업데이트를 통해 블록증명 방식을 채굴이라는 작업증명(PoW)에서 보유량인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면서 ‘증권성’이 부각됐다. 이더리움을 32개 이상 블록체인에 예치(스테이킹)해야 블록 생성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바뀐 것인데, 이더리움을 예치하면서 받는 보상이 주식의 배당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업데이트 직후 겐슬러 위원장의 발언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상자산을 예치할 수 있게 해주는 중개업체나 가상자산 플랫폼들은 증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하우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더리움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지만, 지분증명 방식의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간주하고 연방증권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빗썸경제연구소는 “미 증권거래위가 이더리움을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증권으로 판단한다면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거래소와 탈중앙화금융(DeFi) 프로젝트 모두가 규제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코인(알트코인)을 증권으로 볼지 여부는 미국 규제당국에서도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미 증권거래위는 대부분의 알트코인을 증권으로 규정해 규제하려는 반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가상자산을 상품으로 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디지털상품거래법에는 가상자산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상품선물거래위에 주는 내용이 담겼다.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 판단 기준은 루나 및 테라유에스디(UST) 폭락 사건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쟁점이다. 검찰이 지난달 14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등 관계자 6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투자계약증권이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이익을 기대해 공동사업에 금전을 투자하고 대가를 받는 형식의 증권을 가리킨다.

다만, 테라폼랩스 쪽은 지난달 28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보낸 입장문에서 “루나는 증권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 6일 법원이 권 대표 측근인 유아무개 테라폼랩스 업무총괄팀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기도 했다. 법원은 기각 사유 중 하나로 루나가 자본시장법상의 투자계약증권인지,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향’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향’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제공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증권법상의 공시 규제 및 불공정거래 규제가 적용된다. 코인 거래소에서 무더기로 상장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업계는 가상자산이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규제받는 쪽을 선호한다.

지난 7월 미 증권거래위는 알트코인 9종을 증권으로 지목하면서 법적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폈다. 증권거래위와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코인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발생한 선행매매 사건과 관련해 증권법 위반 사항인 내부자거래 혐의를 적용했다. 앰프(AMP), 파워레저(POWR) 등이 ‘증권’으로 지목됐다. 그러자 거래소 바이낸스유에스는 앰프 코인을 상장폐지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국내 코인 거래소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는 지난 8월 “미 증권거래위가 증권으로 분류한 9개 가상자산 중 회원사가 거래를 지원하고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검토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국내 원화마켓 거래소인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가 닥사 회원사다.

닥사는 ‘거래지원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을 채택하고 지난 10일부터 시행 중이다. 가이드라인은 △내재적 위험성 △기술적 위험성 △사업 위험성 등으로 이뤄진 세부 항목을 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나, 정작 증권성에 대한 평가는 제외하기로 했다. 민간 차원에서 살펴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재진 닥사 사무국장은 “미 증권거래위가 증권으로 판단한 토큰들과 관련한 상황을 주시하며 향후 나올 국내 정부 방침을 준수할 예정”이라며 “토큰의 증권성에 대한 판단은 자체적으로 평가할 항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닥사는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이에 맞춰 투자자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연말까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6일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자본시장연구원과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향’ 정책 세미나를 열어 증권형 토큰 규율체계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에는 △증권성 토큰은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디지털 증권시장에서 유통한다 △장외시장에서 거래하는 경우에는 증권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시장거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투자자 보호와 규제차익 방지를 위해 기존 증권과 동일한 유통체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전자증권법을 개정해 증권형 토큰을 전자증권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증권형 토큰을 폭넓게 정의할 경우 알트코인 상당수가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돼 거래소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반면 증권사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디지털 자산의 증권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학계에서는 국내 상황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증권형 토큰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미국의 경우 증권성에 대해 가장 넓게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만약 국내도 미국처럼 엄격하게 증권성 여부를 볼 경우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의 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지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매달 한 차례 한겨레신문의 블록체인 특집 지면 'Shift+B'에 블록체인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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