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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이시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5화

부자를 위한 양적완화를 넘어 비트코인으로

2020. 05. 11 by Michael J Casey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즈.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즈.

2012년 3월 초, 미술품 한점이 무려 1억1900만달러(1448억원)에 팔렸다. 8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3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미국인의 8%가 일자리를 잃고 미국 내 주택 압류 건수가 400만건에 달했으며, 유럽은 부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실행하느냐를 놓고 분열을 거듭하던 때 알려진 높은 낙찰가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1억1900만달러에 팔린 그림은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였다. 그보다 2년 전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 거래된 1억650만달러를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8년 전 기사를 쓰며 놀랐던 건 당시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가파른 내림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 모두가 가장 우려하던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고용의 적인 디플레이션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연준은 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낮추고 수천억달러의 돈을 찍어내 국채를 사들였지만, 투자와 소비 지출을 늘리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 대로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귀한 미술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경기를 부양하려고 쏟아부은 긴급 지원금이 불공평하게 분배된 사실을 바로 보여준 예였다.

지난달 9일, 한 트위터 글이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로 2008년 금융위기 이상의 혹독한 위기가 찾아온 가운데 예전 경제위기 때 경험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 또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QE)를 시행해 수조달러를 들여 국채뿐 아니라 부도 위험이 큰 정크본드까지 모조리 사들이겠다고 나선 가운데, 실물경제엔 디플레이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미국 월가에서는 오히려 자산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명 투자가 프레스턴 피시는 코인데스크의 ‘브레이크다운: 돈을 다시 생각하다(Breakdown: Money Reimagined)’ 팟캐스트에 출연해 ‘무제한 양적완화’에도 실물경제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업계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돈을 찍어내면 일반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질까봐 우려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일상생활에 밀접한 실물경제 대신 피카소의 작품이나 주식 등 부유층이 향유하는 자산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컨센서스 2020(Consensus: Distributed)에서 연사를 맡은 투자자 멜텀 드미러스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된 인기 크립토 트위터(Crypto Twitter) 글을 언급하며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화폐 발행기 그림 때문에 착각하고 있다. 모두 소비자 물가지수를 바라보지만, 거기서 연준이 찍어낸 돈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의 악순환

여기서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사회가 지닌 핵심 문제에 대해 솔직히 논해보자. 적어도 당분간은 소비자 물가 상승이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작금의 문제는 손실 책임은 사회 전체가 나뉘고, 이익은 부유한 자본가에게만 돌아가게 하면서 나머지 사회구성원의 권리는 박탈하는 월가 중심의, 월가 의존적인 통화정책의 실패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피시가 지적한 것처럼 세계 경제는 달러를 지나치게 추종하는 고장 난 순환고리에 갇혀 있다.

준비통화인 달러가 글로벌 신용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미국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들에게만 유리하게 달러를 평가절상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겁을 먹은 채권자들이 마진콜을 넣고, 해외 채무자들은 부채를 상환하려고 급하게 달러부터 확보하려고 한다. 이는 설상가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부채 상환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미국 연준으로선 세계 시장에 달러를 풀어 시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가도록 하는 수밖엔 없게 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해외 유입자금과 연준의 긴급조치로 금리가 내려간다. 정부는 부채 상환을 미뤄주고, 적자가 위험 수준을 넘어 증가하는데도 경기 부양 지원금을 나눠준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가 책정한 구제금융 자금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달러 강세로 일반 소비자들이 얻게 되는 건 인플레이션 감소나 소득이 줄어드는 디플레이션이다. 학자금 대출과 신용카드 빚에 시달리는 일반 국민에게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다.

 

디지털 자산가격 상승 

일반 국민이 가장 바라는 건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나 주식 투자자가 누리는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거다.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자산군, 즉 이전 금융위기 때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진귀 예술품이나 금, 주식처럼 연준의 제한 없는 경기부양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자산군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암호화폐, 그중에서도 비트코인을 말하는 거다.

19세기 표현주의 작품의 수요를 끌어올린 논리를 지금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트코인에 적용할 수 있다. 경제위기 때 진귀 예술품이나 맨해튼 부동산, 전용 요트, 기업의 환매 대상이 되는 주식 가격이 상승하는 주된 원인은 금융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은행 계좌에 들어오는 경기부양 자금 규모에 비해 해당 자산들이 희소성을 띠기 때문이다. 이 자산들의 공급은 한정돼 있다. 통조림 수프 몇개를 구하려고 가치가 낮은 자국 화폐 볼리바르를 다량 지불하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훨씬 화려한 사치품에 적용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모든 걸 쉽게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인터넷상에 존재하지만, 통제 권한을 가진 주체가 임의로 공급을 늘릴 수 없는 디지털 자산이 최근 사상 처음으로 희소성을 띠게 됐다. 희소성이란 바로 비트코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생산적인 유용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증명 가능한 희소성이야말로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다.

이번 주로 예정된 비트코인 반감기를 앞두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 계획된 일정이 비트코인에 증명과 측정이 가능한 희소성이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뉴욕에 본사를 둔 코인데스크의 모회사 디지털 커런시 그룹(Digital Currency Group)의 계열사 중 하나인 투자회사 그레이 스케일(Grayscale)은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를 하는 시기에 비트코인은 양적긴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 출처=www.PabloPicasso.org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 출처=www.PabloPicasso.org

지난 5일, 통상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새로운 가치저장 수단인 비트코인 가격이 2달 반 만에 처음으로 개당 1만달러를 넘어섰다. 비록 지난 2월 중순 세웠던 1만598달러라는 올해 최고가를 넘어서진 못했지만 말이다(공급이 희소해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의 실물가격은 이번 경제위기로 상승세로 돌아선 뒤, 급기야 2011년에 세운 역대 최고가 경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어쨌든 지난달과 이달 초 비트코인 가격이 지속적으로 급등하자 디지털 시대에 이런 종류의 자산이 가치가 있는 이유를 두고 다시 논의가 활발히 일고 있다.

비트코인은 수학적으로 그 희소성이 정해지기 때문에 법정통화를 무제한으로 발행하는 양적완화와는 정반대 성격을 띤다. 블룸버그 통신의 제러드 딜리언 기자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화폐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트코인과 경쟁하려는 암호화폐들도 있긴 하나 가장 역사가 오래된 암호화폐로서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하는 비트코인은 마치 금처럼 디지털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문화적 지위를 지닌다.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폴 튜더 존스는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둘 건 뭉크의 작품을 사는 것과는 달리 비트코인은 헤지펀드 거물이나 경매 회사의 우수 낙찰자들처럼 부자들만 사는 자산이 아니란 점이다.

 

무제한 그 이상의 QE

연준의 대차대조표. 출처=세인트루이스 연준
연준의 대차대조표. 출처=세인트루이스 연준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할 때, 비트코인은 양적긴축을 하고 있다는 말을 앞서 했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 미국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대대적인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권한 내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2월26일~4월29일 사이 연준은 2조5000억달러(3046조원)라는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어 채권을 비롯한 증권을 매입했다.

연준은 2008년 9월10일~11월12일에도 대차대조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지만, 당시 은행들을 보호하고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 여파를 수습하기 위해 사용된 금액은 1조3000억달러(1584조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연준의 양적완화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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