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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의 로우킥] 블록체인 업계 3년 경험한 소회

변호사가 블록체인에 빠져들었던 이유

2020. 09. 16 by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의 한서희 변호사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세미나'공정하고 혁신적인 암호자산 세제를 디자인하다'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코리아
법무법인 바른의 한서희 변호사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세미나'공정하고 혁신적인 암호자산 세제를 디자인하다'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김동환/코인데스크코리아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지금부터 5년 전인 2015년쯤입니다. 지인이 ‘엄청나게 복잡한 공식을 풀면 비트코인이라는 게 1개 나오는데 그게 돈처럼 사용되기도 한다더라~’면서 이야기를 해준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대체 그 공식이 뭔데?’라고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르는데 어려운 공식이라고 했습니다. 전기가 엄청 많이 든다, 밤새 컴퓨터를 돌리면 된다더라 이런 이야기였는데요. 그때는 그게 무슨 이야기일까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이후 다시 블록체인과 그 비즈니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건 스타트업에 다니는 지인이 ICO(암호화폐공개)에 대해 물어보면서였습니다. 지인은 ICO를 한다면서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ICO에 대해 알아보니 어떤 새로운 현상이었고, 규제 대상은 아니더라고요. 지인의 그 질문은 제가 블록체인을 법률에 대입시켜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뭔지 알아야 하니, 외국 사례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더리움이니 비트코인이니. 아니, 그때 그 비트코인!(아, 이미 비쌌구나…) 알면 알수록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라 빠져들었습니다. 어떤 것들이 새로웠냐면요, 유통이 어려워 사실상 자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도 토큰화를 통해 유통되면 자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그 개념이 정말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기여에 대해 보상받는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신뢰의 프로토콜이라는 개념도 매우 좋았습니다. 음… ICO는 당시 몹시 생소한 개념이긴 했어요. 이게 증여야? 매매야? 이런 생각이 들었죠. 토큰은 뭐야, 증권하고 뭐가 다른데? 등등…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니 블록체인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이해 안 되는 개념에 왜들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탈중앙화가 지향하는 것이 뭘까? 등등, 그리고 굉장히 보수적인 일본 같은 나라에서 자금결제법이 가상통화를 규정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했고요. 

그 이후 광풍이 불어닥쳤어요. 그리고 정부는 국내 ICO를 금지한다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요. 사업자들은 산업이 위축된다고 했고, 정부는 피해자가 너무 많이 양산됐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양쪽 모두를 변호하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피해자도 변호하고 사업자도 변호한 것이죠(물론 모두 다른 사건이었으므로 이해상충문제는 없었습니다). 양쪽 입장이 다 이해되는 면이 있었어요. 피해자가 많이 생겨났고 억울한 사람이 많이 생겨났고…, 하지만 제대로 된 사업가가 힘들어하기도 했고, 결국 전체 산업이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왼쪽부터)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왼쪽부터)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부분은 건전하게 사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건전하게 인정받으면서 (떳떳하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 제도권에서 적법하게 영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겼고 곧 ‘특정금융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상 신고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신고를 수리한 이후 규제체계 내에서의 영업도 가능해지게 되었어요.

반면 안타까운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군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미 외국의 사업자들에게 많은 주도권을 내어주었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그렇더라고요. 외국 사례들을 봐도 처음에는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영국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죠.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ICO를 허용하는 제도까지 도입되었고요. 

이런 나라들이 가상자산 관련 산업을 인정하기까지는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도권에 편입이 된 것이고 또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다소 급진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러한 외국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경우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죠.

외국의 규제 당국은 어떻게 허용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산업은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를 강화하고 투자자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할까? 우리 투자자들은 정부 당국에서 신뢰할 만큼 성숙하고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까? 저는 처음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갖고 끊임없이 그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듯 하네요.

하지만 제가 한가지 확신하는 건, 아직도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사람들은 가상자산을 자연스럽게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 전세계적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회사들이 몇 있긴 하지만요. 인터넷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곳은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새로운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미지의 세계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인터넷의 세계는 너무 위험해서 해킹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 결제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공인인증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인인증서를 통해 안전한 인터넷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알리바바나 아마존이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비슷한 이유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테슬라와 같은 기업이 나오기도 어려운 실정이죠.

우리는 비즈니스의 안정성을 굉장히 많이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측면도 있고요. 물론 정말로 말이 안 되는 허황한 경우도 있고 우리가 꿈꾸던 것이 어느날 신기루였다는 것이 밝혀질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고 그 피해를 누가 책임질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무겁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미래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을 위해서 공인인증서를 만들었을 때처럼, 우리는 규제와 안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결국 우리는, 무엇이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가치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우리 사회를 위한) 최선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가져야 하고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된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지금 시점에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혁신인가. 안전인가. 다양성인가. 통일성인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져야 하고,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어떤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길 것인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뒤에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 그것이 불안정해 보이지만 혁신적인 새로운 길이든,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규제 안에서의 길이든 – 후회 없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서희 파트너 변호사는 법무법인 바른의 4차산업혁명대응팀에서 블록체인, 암호화폐, 인공지능(AI) 등을 맡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자문위원이다.
한서희 파트너 변호사는 법무법인 바른의 4차산업혁명대응팀에서 블록체인, 암호화폐, 인공지능(AI) 등을 맡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자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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