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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 사라진 걸작의 이야기는 우리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 상징에는 더 큰 미술사적 의미가 숨어있다. 반 고흐와 뱅크시, 해킹과 NFT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의사 가셰의 초상'(1890)과 '검은 가셰'(2005~2006)
반 고흐의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이 1990년에 비싼 값으로 팔렸다. 이 그림을 사들인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는 자기가 죽으면 이 작품을 화장해 달라고 말했다. 사이토가 죽은 후 이 작품은 대중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 가셰의 초상'은 불타 사라졌을까?
훗날 밝혀지기로는 '의사 가셰의 초상'은 다른 소장자에게 팔려갔다고 한다. 불에 타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미술 시장에서 '갑질'을 한 일본 사업가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마크 알렉산더(Mark Alexander)의 그림 '검은 가셰(The Blacker Gachet)'는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 이 걸작을 안타까워 하며 검은 물감으로 따라 그린 작품이다.
제도비판미술과 한스 하케
독일 예술가 한스 하케(Hans Haacke)가 생각하기에, 미술관 역시 갑질하는 기득권층과 한통속이었다. 하케는 1970년 모마(MoMA) 전시 때 미술관에 큰돈을 대던 록펠러 집안을 욕보이는 '모의 투표'를 실시했다. 1971년 구겐하임 전시 때는 미술관에서 거부 당하는 일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하케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이번에도 하케는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젊은 미술가와 해커가 하케의 설문 조사 홈페이지를 해킹한 일이 일어났다. 젊은 세대 눈에는 제도비판미술(institutional critique) 역시 기성세대였을까.
미술 시장과 뱅크시, 그리고 NFT
뱅크시 역시 미술 시장을 고깝게 보던 작가다. 작품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경매장 어딘가에 숨어있던 뱅크시가 원격조종장치로 그림을 파쇄해버린 2018년의 사건은 유명하다.
뱅크시는 '얼간이들(Morons)'이라는 그림도 그렸다. 미술 시장에서 비싼 값에 그림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미술 시장을 조롱하는 이 작품이 다시 미술 시장에서 경매에 부쳐진 것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낙찰받은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이라는 사람들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2021년 봄, 이 사람들은 '얼간이들'을 불태우며 영상을 찍었다. "뱅크시라면 (미술 시장을 조롱하는) 우리 뜻을 이해할 것"이라는 말은 진심이었을까? '얼간이들'은 원작이 사라진 채 NFT로 발행되어 4억원에 팔렸다. 원작의 네 배 가격이었다.
8월말, 뱅크시의 공식 홈페이지에 뱅크시 작품의 NFT 경매가 올라왔다. 영국의 수집가가 3억9천만원의 값을 치르고 낙찰받았지만 사기였다. 뱅크시는 NFT 작품을 발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홈페이지를 해킹한 해커가 얼마 후 대부분의 돈을 돌려주었다.
작품을 불태우고, 해킹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면 범죄에 가까운 행위들이다. 예술에 관해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답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도 같다. 이런 사건들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예술 재료'로 NFT를 골랐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by 김태권, https://digitally.your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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