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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다시 생각하다
주간 연재 칼럼 ‘돈을 다시 생각하다’ 74화
[마이클 케이시]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
2021. 09. 27 by Michael J Casey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출처=엘살바도르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출처=엘살바도르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암호화폐 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집어내 암호화폐의 장기적인 잠재력에 대한 신념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공격을 일삼으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영국 작가 데이비드 제럴드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은 내겐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잦은 버그로 문제가 되고 있는 치보(Chivo) 월렛과 함께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출범시킬 당시 대처가 미흡했다고 주장한 그의 최근 발언에 나는 상당 부분 동의했다.

얼마 전 제럴드의 포린 폴리시(FP) 기사 제목처럼 엘살바도르 정부의 실험을 ‘촌극(farce)’이라고까진 부르진 않겠지만, “만약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진정으로 싫어하길 부켈레 대통령이 바랬던 거라면, 치보가 그 친절한 예제”라고 말한 제럴드의 주장이 잘못됐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한 논란의 비트코인 법이 발효됐던 지난 6일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400개를 매입했는데, 그 후로 비트코인 가격은 약 25%가량 떨어졌고 이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우연의 일치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더해 치보 월렛에서 지속적으로 결함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과 비트코인 법의 엄격한 조항에 관한 우려, 그리고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자행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처사가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비트코인을 인출하기 위한 ‘뱅크런’ 사태를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신분증 번호를 입력해 치보 월렛을 만든 사람들에게 1인당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했으며, 이후 비트코인 가치는 급락했다).

이는 많은 엘살바도르인들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면 명성에 흠집이 갈 제럴드와는 달리, 나는 엘살바도르 정부와 신중한 암호화폐 업계 리더들에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가난한 자국민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영구적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비트코인이 지역민들에게 새로운 사업과 에너지 개발 모델에 참여할 권한을 줄 탈중앙식 전략 중 하나란 사실을 엘살바도르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트코인은 엘살바도르가 국제 대부기관들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루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비트코인의 ‘자기주권화폐(self-sovereign money)’로서의 가능성이 좌우를 막론하고 지난 수십 년간 빈곤한 국민들을 이용하고 혹사시킨 정계와 재계 엘리트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가난한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주로 내세우는 마케팅 메시지가 이런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함으로써 암호화폐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외곽. 출처=Oswaldo Martinez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함으로써 암호화폐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외곽. 출처=Oswaldo Martinez

획일적인 메시지

좋든 싫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중산층의 투자를 유도하는 비트코인의 가치 제안은 바로 ‘비트코인을 호들(HODL, 계속해서 보유)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야말로 차이를 모르는 획일적인 메시지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중에 돈이 들어올 때마다 급한 불을 끄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잘 살라(have fun staying poor)’라는 슬로건이 적절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매일같이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는 세계 최빈국 국민들의 일상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작지만 목소리가 큰 ‘크립토 브로(crypto bro)’ 하위문화가 보이는 과한 언행들을 제럴드가 연신 들먹이면서 전체 암호화폐 업계 움직임까지 함께 싸잡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그러게 내가 그럴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잘난 체할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살바도르를 비롯한 최빈국에 사는 빈곤층에게 비트코인이 쓸모없다 말하는 건 분명히 잘못됐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국가가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목적과 방식이다. 그리고 프로젝트 출범 당시 엘살바도르 정부가 메시지 전달과 프로젝트 설계에서 잘못된 판단을 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실패의 이유는 엘살바도르 같은 국가의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국민과 화폐 사이의 부정적인 관계를 엘살바도르 정부가 간과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의 영향력을 직시하고 있는 미국 정부는 감시와 소프트 파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출처=Unsplash
출처=Unsplash

엘살바도르가 달러를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에서 현재 달러를 공식화폐로 사용하고 있고, 내가 6년간 살았던 아르헨티나에서도 1990년대에 사실상 달러가 공식화폐로 통용됐었다. 이 경우들처럼 한 국가의 교환 수단이 글로벌 준비 통화인 달러로 돌아간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을 의미하며,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불안정한 환율로 심각한 제도적 실패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또한 해당 국가 국민들이 지도층의 정치적 설득이나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은행가들이 누구든 관계없이 지도층의 화폐 관리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달러란 돈을 물 쓰듯 하는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놓은 덫의 상징이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국민들에게 달러는 안도감이자 정부가 행하는 혹사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며, 엘살바도르가 2001년 달러를 공식화폐로 채택한 이후 수십 년간 지속돼온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상대적인 가격 안정성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하루에 5.50달러도 못 버는 빈곤선 아래에 살고 있는 하위 25% 사람들의 경우, 터무니없이 비싼 수수료와 엄격한 신원증명 요건을 요구하는 은행에서 그리 많지도 않은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며,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주는 화폐는 당연히 지폐가 된다.

이제 이들에게 잠재적으로 정부에 디지털 감시 권한을 줄 수 있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버그투성이 치보 월렛을 주고, 30달러 상당의 돈을 비트코인이란 생소한 화폐로 나눠주겠다고 말하는 거다. 그리고 시장 변동성으로 인해 그들이 온종일 열심히 일해서 힘들게 번 돈을 모두 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다.

이번 주 엘살바도르인들이 새로운 치보 ATM기 앞에서 줄을 늘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에서는 이 사건을 보도하며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썼는데, 과연 이게 그럴 일이었을까 싶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ATM기 앞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비트코인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중에 든 25달러(엘살바도르에서 한 달 가계 식료품비에 해당함)가 더 줄어들기 전에 미리 출금을 하기 위해 몰려든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원한 건 디지털 달러도 비트코인도 아닌 달러 지폐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은 장기 보유하는 것이 좋다고 얼마나 강하게 믿든지 간에 그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모두가 지급받은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인출한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반등할 거라는 데 베팅하고 있고, 다운받은 치보 앱이 제대로 작동한 운 좋은 사람들은 앱에서 비트코인을 디지털 달러로 바꿔 향후 결제 용도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비트코인이나 달러로 저렴하게 송금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처럼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하지만 현재 ‘투더문(to the moon)’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대감이 하락장과 함께 기술적 문제에도 동시에 봉착한 위험을 겪고 있다. 아마 가치 제안 자체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대안적 접근법

엘살바도르인들에게는 ‘호들’이 아닌 ‘비들(BUIDL, 구축)’이란 메시지를 전했어야 했다. 형식주의식 대책으로 비트코인을 나눠줄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부와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루기(구축하기) 위해 큰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비트코인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치보를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거의 즉각적인 비트코인 송금 또는 달러 송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이 현시점에서 달성하기 쉬운 목표일 것이다. 이 목표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 등 국외에 사는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거주하는 국가의 서비스 제공업체들과의 통합 작업이 필요할 거다.

하지만 치보 앱에서 저렴한 송금이 주는 진정한 힘을 보여줄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앱을 통해 달러나 비트코인을 이용자 지갑으로 보낼 때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의 결제 프로세스가 저렴한 비용으로 송금을 거의 즉각적으로 실행하기 때문이다.

더 광범위하게는 내가 예전에 칼럼에서 주장한 것처럼, 시골 지역에서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는 공동 발전소 운영 비용을 비트코인 채굴 프로젝트로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아니면 소규모 지열발전 기술을 이용해 풍부한 지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화산을 이용한 비트코인 채굴 프로젝트(국영 지열 발전소에 딸린 채굴 시설을 통해서 국가가 중앙화된 국고로 비트코인을 축적하는 방식)와 달리, 이 비트코인 프로젝트는 에너지 및 기타 인프라에 있어 탈중앙화 원칙을 고수한다. 이를 통해 지방 커뮤니티에 비트코인 공급원을 꾸준히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공급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전국 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선 협업이 필요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조직들과 보안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부 기구나 외국 정부와도 손잡아야 할 수 있다. 시스템 설계와 사회경제적 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복잡한 정책 결정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부켈레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되사야 하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가까운 미래에 오르게 된다면 향후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 크게 늘게 될 것이다.

영어기사: 박소현 번역, 임준혁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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