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금융은 빠르고 빨라야 한다는 오해에 대해

등록 : 2019년 6월 12일 11:00 | 수정 : 2019년 6월 12일 09:28

The Speed Dreams of Security Tokens

출처=셔터스톡

자연에서는 속도가 곧 생존과 직결된다. 포식자나 먹잇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으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니 빠른 동물이 느린 동물보다 유리하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리 유전자는 속도를 성공의 전제 조건이자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믿음은 금융시장에서도 유효하다. 경쟁 우위나 추가 이익을 누리려면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이른바 초단타 매매(HFT, high-frequency trade)를 하는 트레이더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속도가 생명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증권형 토큰 행사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기업가, 투자자, 전통적인 금융업 종사자들이 모였다. 증권형 토큰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에 관해 토론하는,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증권형 토큰이 가져다줄 혜택에 순위를 매겼다. 유동성, 운영 효율, 투명성, 혁신 등 목록에 있는 다양한 결과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분야가 분야인 만큼 참가자의 면면도 다양했고, 명확한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증권형 토큰이 속도를 높여줄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며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속도가 주요 혜택이 되려면 다음 세 가지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 속도는 바람직하고
  • 블록체인은 속도를 높여주며
  • 속도는 기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가정에는 모두 결함이 있다.

 

속도가 제일 중요하지 않다

먼저 왜 거래가 빠르면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자.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거래를 청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구매자가 결제를 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본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간다. 화요일에 자산을 구매하고 싶다고 밝힌 투자자가, 수요일이 되면 자산을 살 돈이 수중에 없을 수도 있다.

전통적인 시장은 중앙의 청산 기관(Central Clearing Party, CCP)이 책임 지고 이 문제를 풀었다. 청산 기관이 거래의 결제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에 중개자가 늘면서 추가 비용이 들게 됐다. 청산 기관이 사라지거나 제 역할을 못 해 거래가 체결되지 못할 위험도 여전히 있다.

증권형 토큰 시장에는 아직 중앙 청산 기관이 없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청산 과정을 주관하는 기관이 등장해 유동성과 안정성을 확충할 수도 있다. 암호화폐 자산도 거래 사이클이 느릴수록 리스크가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다.

이론상으로는 분명 거래가 빨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금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판매자고, 당신이 구매자라고 가정해보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현금을 넘겨받고 싶을 것이다. 현금을 받아 투자를 하거나 다른 거래 대금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결제는 빠를수록 좋다. 반면 당신은 어떻게든 현금을 늦게 넘길수록 더 좋다. 어딘가에 현금을 넣어두고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도 구매자는 결제가 늦어질수록 좋다.

블록체인 기술이 약속하는 즉시 정산이 가능하려면 자금을 관련 거래소나 브로커에게 예치해 두어야 한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에 투자 수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수익은 다른 곳에 돈을 투자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보다는 훨씬 낮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고 투자해주는 경우에는 그 자산을 예치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자산의 소유주이지만, 실제로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공매도자에게 빌려줬거나 담보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해지하고 대금을 치르기 위해 자산을 현금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즉각적인 정산을 위해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면 대출이나 담보 시장이 성장할 수 없다. 그러면 정교한 시장이 등장하기가 어려워진다.

최신 청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온 모스크바 증권거래소도 몇 년 전에 정산 기간을 당일 정산에서 이틀로 늘렸다.

결제와 청산 속도가 빨라지면 리스크는 줄어들지만, 그만큼 비효율이 늘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블록체인은 원래 빠르지 않다

이제 블록체인 거래가 전통적인 거래보다 빠르다는 오해를 짚어보자.

블록체인은 중앙화 데이터베이스보다 훨씬 느리다. 블록체인의 합의 알고리듬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 네트워크가 이체를 검증하기 때문에 거래를 처리하는 데 대개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까지 걸린다.

심지어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도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

반면 전통적인 시장에서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정산도 블록체인이 훨씬 느리다. 분데스방크는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를 소유한 도이치 버즈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과 전통적인 금융 정산 방식을 비교, 시험해 결과를 발표했다.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속도와 비용 면에서 전통적인 방식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은 문제가 아니다

물론 블록체인 기반 청산이 전통적인 방식보다 더 빨라야 말이 된다. 블록체인에는 중개자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단계가 사라지면 그만큼 자산 이체나 결제가 빨라져야 앞뒤가 맞는다.

그러나 거쳐야 하는 단계의 수나 중개인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절차에 관한 것이다. 절차는 상황에 따라 점차 진화한다. 블록체인 기반 이체와 결제 시스템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즉각적인 정산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자산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기대는 새로운 자산이 시장을 찾아가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진화하고 블록체인 기반 자산과 청산 방식이 퍼져나가면 자본시장이 전면적으로 개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만 이러한 개혁이 일어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 블록체인 업계 전체에 거래 표준이 정립되어 상호운용성이 보장되고 자산과 자금이 매끄럽게 오간다.
  • 규제와 감독을 통해 사기와 리스크를 방지한다.
  •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법정화폐 이체에 의존하지 않고, 즉시 결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
  • 스마트계약은 소유권 이전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의 전제 조건이 실현될 확률은 높은 편이다. 다만 조건이 모두 갖춰진다고 증권형 토큰이 전통적인 자산보다 반드시 더 빠르게 거래되고 청산된다는 보장은 없다.

자연과는 달리 금융 시장에서는 빠른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금융에서는 남을 꺾고 이기는 것보다 효율을 높이고 손해를 빨리 털고 일어나는 회복력이 더 중요하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떠올리면 된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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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